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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포스트 코로나, 돌봄정책의 대전환

2021-09-08

양난주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돌봄을 말하는 사회가 되었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돌봄’이라는 글자를 신문과 방송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1990년부터 최근까지 일간지와 방송뉴스에서 돌봄을 키워드로 한 기사를 검색1)해보면 2005년을 전후로 매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씩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부터는 한달에 수백 건씩으로 늘었고 10년이 지난 2018년에는 다달이 수천 건의 돌봄 기사가 공론장에 등장하게 되었다. 지난 30년간 돌봄 보도가 가장 많이 쏟아진 달은 2020년 3월 4,777건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정부의 집단시설·다중이용시설 대응 지침이 발표된 다음 달이다.

돌봄은 사람을 살리는 노동이고 돌봄 없이 사회가 작동하지 않는다며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마도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학교와 어린이집과 사회복지기관 운영이 중단되었던 시기의 직간접적 경험들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으리라.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사회, 1, 2인 가구가 절반이 넘으며 노인가구 열 중 두 가구만 자녀와 동거하는 현 사회의 돌봄 공급은 이미 가족 경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아동은 부모에게 보호를 받지만 동시에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보육교사와 교사를 만나면서 성장한다. 환자나 장애인, 노인들도 가족에게서만이 아니라 간호사, 사회복지사, 활동지원사, 요양보호사들과 관계를 맺고 지원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가족 관계 안에서 자리한다고 여겨지던 돌봄이 정부 정책의 대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저출산 현상 때문이다. 2002년도 합계출산율이 1.17명으로 발표되고 이듬해부터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이 본격화되었다. 200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영유아를 위한 보육정책이 확대되고 초등아동을 위해 지역아동센터, 초등돌봄교실이 만들어지고,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었다. 돌봄이 필요한 영유아기와 노년기에 돌봄이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게 필요하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동안 무의탁 빈민,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선별적으로 제공되던 사회서비스의 시혜적 성격이 비판되었다. 아동 보육과 노인 요양의 수급자격을 결정하는데 소득과 자산조사가 사라졌다.


정부의 돌봄 보장은 돌봄이 필요한 아동, 장애인, 노인 당사자에게 돌봄서비스를 살 수 있는 비용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확대되었다. 보육바우처, 장기요양, 사회서비스바우처가 그러했다. 정책의 수혜를 받는 아동, 노인, 장애인 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크게 늘어나 2백만 명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실제 돌봄서비스의 공급은 민간 시장에게 맡겨졌다. 정부는 이용자에게 선택권을 보장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려면 여러 공급자가 경쟁하는 시장방식이 효과적이라는 정책논리를 세웠다. 단시간에 다수의 공급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개인사업자도 영리사업자도 모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보육은 88%가 민간이고, 장기요양은 98%가 민간에 의해 공급되는 돌봄시장이 만들어졌다.

어린이집의 경우 정부가 시설에 투자하고 인건비를 지원하고 규제를 높여 운영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이 더디게 늘고 있다. 현 정부는 국공립어린이집 이용 아동을 40%로 높인다는 국정과제를 세웠지만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노인요양의 경우 국공립어린이집과 같은 공공형 서비스 모형도 없다. 지자체가 설립한 노인요양시설이 손에 꼽을 수준으로 있지만, 대부분 시설 투자에 그치고 운영은 민간위탁으로 넘기기 일쑤다. 그 결과 서비스 질은 개별 돌봄노동자의 책임이고 돌봄 고용의 질은 개별 기관 고용주 재량이 되었다. 돌봄노동자에 대한 임금과 처우도 기관마다 다르고, 쉽게 그만두고 쉽게 옮기는 일자리가 되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감염병을 경험하면서 돌봄노동자를 필수노동자로 호명하고 있다. 보건의료노동자와 돌봄노동자가 감염병의 위험 속에서 환자를 비롯하여 취약한 사람들의 건강과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 언론은 시시때때로 칭송했다. 그러나 칭송과 감사만 받고 살기에 돌봄노동자의 고용지위와 임금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돌봄직 월평균 임금이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절반이 안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임시직 비중도 전체 근로자평균에 비해 너댓 배 높다. 오래 일해도 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임금도 오르지 않는다. 가구의 생계유지를 책임지기 위해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되기엔 한참 불안하다. 돌봄을 불안정 저임금 고용으로 제도화하고 단시간 시급제이거나 장시간 월급제가 아니면 찾기 어려운 일자리로 만든 주된 책임은 정부에 있다. 낮은 재정투입과 민간투자 의존, 낮은 규제와 관리감독 소홀이 똘똘 뭉친 시장화 정책의 산물이다.

보육이나 요양은 정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사회서비스이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내는 공적 재원을 기초로 한다. 사회적 돌봄을 일선에서 수행하는 사람인 보육교사나 요양보호사에게 지불되는 임금도 공적 재원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현재의 돌봄 정책은 공공서비스와 공공재원을 제도화된 시장을 통해 사유화한다. 사회적 돌봄관계는 시장을 거치면서 사고파는 관계로 맺어진다. 사회적 돌봄 보장을 위한 제공기관 운영자나 일선 돌봄노동자에게 사회적 책무성도 부여되지 않고 그 역할에 따른 보장도 없다. 이용자가 받는 서비스가 사회적 지원이자 보장이라는 의미도 전달되지 않는다. 사회적 돌봄의 가치와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맹신해온 시장중심 돌봄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제도로 수급자격과 공급기준이 정해지는 돌봄사업이 본래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제도개선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공서비스인 보육과 요양, 정부사업을 수행하는 제공기관, 공공서비스 제공자로서 돌봄노동자의 위상에 걸맞는 책임을 지우고 합당한 보상을 보장할 수 있는 과감한 전환 계획이 수립되길 바란다.

 


 

1) 2021년 8월 16일 기준으로 빅카인즈(www.big kinds.or.kr) 뉴스 검색(중앙지, 경제지, 지역종합지, 방송사, 전문지 합하여 25종 매체 모두 선택, 1990. 1. 1-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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