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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돌봄노동 패러다임 전환과 보육정책

2022-09-23

 최은영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돌봄 정책의 발전을 위해서는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돌봄 정책 확대기조 속에는 수요자의 요구수용과 이용자의 편의 증진이라는 목표만이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접근은 의도와는 달리, 공급 측 투자를 통한 품질향상이라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운 상태로 방치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서비스분야에서 공공성이나 이용자 편의성, 비용지불방식 정도만 고민에 포함된 것으로 보이고, 서비스의 질, 품질관리, 서비스인력의 처우개선, 중앙-지방정부 간 기능분담, 거버넌스 등을 둘러싼 큰 방향성이 부족하다. 돌봄을 바라봄에 있어 ‘돌봄을 받을 권리(right to receive care)’만 주목하고, 돌봄으로부터 해방될 권리(right not to care)나 ‘돌봄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가질 권리(right to have time for care)’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하다(최은영, 2017). 균형 잡힌 보육정책의 과제 역시 이러한 새로운 권리의 연장선상에서 구상되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지투데이

 

한국은 서구 선진국과 달리 지난 40년간 여성고용률이 향상되지 못하면서 취업여성비중이 여전히 50%대에 머물러 있는 국가다. 이러한 한계는 취업부모(특히 취업모)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일가족양립지원정책이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였다는 것을 방증한다.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dual earner dual carer) 모델로 수렴하고 있는 서구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유급노동과 무급노동 모두에서 양성평등의 제고라는 변화 역시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후기산업사회의 사회경제적 변동과 더불어, 모든 복지국가가 신사회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기제로서 모의 취업지원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를 통한 아동빈곤의 방지, 세수증가 등으로 강조점을 이동시킨 것(Esping-Andersen, 2002)과 달리, 한국은 이러한 선순환구조를 구축하지 못한 채 초저출산 시기를 맞았다(최은영, 2019). 한국은 정책과제가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상황인데, 이를 푸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정책전환이 일정한 원칙과 효과제고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린이집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낮아 이용을 꺼리는 대상에게 품질 높은 서비스로 대응하지 않고, 시설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양육수당을 도입한 것, 일가족양립정책인 보육서비스를 부모취업여부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무상으로 공급하기 시작한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가족기능 중 돌봄 기능이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인정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지 못한 한국사회는 가구의 돌봄 기능을 사회로 외주화(outsourcing)하고, 그 일을 도맡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업무량과 처우에 대한 밀도 있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 좋은 돌봄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정책적 토대정비에 대해 너무 방치해 두었다. 그러는 사이 보육교사는 12시간 노동,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인원의 아동 돌봄, 휴게시간 미확보, 이용자 가구의 일가족양립을 위해 근무하느라 본인의 출산과 연가, 휴가와 휴직을 포기하는 저렴한 노동력으로 고착되어 버렸다. 점심시간도 아동의 점심을 지도하면서 해치워야 하고, 화장실에 제때 가지 못해 방광염을 달고 살며, 영유아의 눈높이에 맞추어 구부리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 근골격계 질환발병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직무설계 체계화 등의 지향을 갖고 품질향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사의 근무환경 개선 등 지위향상, 업무경감을 통한 서비스 내실화, 업무역량 강화시간, 교사의 활동시간은 수업 준비시간, 핵심 업무 시간, 영유아와 만나지 않는 non-contact시간, 근로기준법에 따른 휴게시간, 자기평가 및 동료평가 시간, 충전 및 연수 등이 필요하다(최은영, 2019a). 

더 나아가, 노동시장 변화를 구상하지 않은 채 일하는 부모의 일가족양립을 보육서비스 만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진정한 일가족양립은 어린이집 교사를 포함한 모든 취업부모의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성 확보, 자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권리로서 확보하는 노력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보육정책은 앞으로 시간정책과 연동하여 부모시간을 확보하면서, 아동발달을 최우선으로 하는 품질 높은 서비스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이미지투데이

 

미국을 제외한 많은 OECD 국가들이 ‘노동시간을 축소하고+서비스를 이용하면서+부모의 직접양육 시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것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최은영, 2018). 보육정책의 방향 역시 부모의 장시간 노동이 당연시 되고, 그들의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보육교사도 장시간 근무하고 밤늦게까지 영유아를 돌보는 방식의 노동몰입형 사회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Mutari and Figart(2000)는 가구 내에서 이루어지는 무급노동도 경제생활에 통합되어 연구되어야 함을 지적하면서, 노동시장 내 유급노동 뿐만 아니라 가구 내 무급노동의 성별분업 역시 성평등적 사회변화와 복지국가 재편과제의 일환임을 강조한 바 있다(최은영, 2020). 

더불어 노동시간이 유연해 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Fraser(1997)가 제시한 보편적 돌봄자모델(universal care-giver model)이 가능하기 위해 돌봄 시간이 확보되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남녀가 모두 근로를 하되 유연요소를 권리로서 누리고, 이렇게 확보된 시간은 남녀가 모두 돌봄 수행자로서의 역할을 맡는데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사용에서 양극화나 차별 없이 성평등의 원칙이 관철되도록 방향을 잡고, 동일한 맥락에서 보육정책은 노동시장(시간)의 변혁적 변화와 조응하면서 교사의 노동환경을 개선함으로써, 품질을 높이고 부모의 일가족양립지원과 아동의 균등발달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탈바꿈, 재편되어야 한다. 특히 보육정책은 앞으로 시간정책과 연동하여 부모시간을 확보하면서, 아동발달을 최우선으로 하는 품질 높은 서비스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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