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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이중 해방: 스웨덴 아빠휴가제도가 던지는 과제들

2022-11-01

김연진(스웨덴 룬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이미지투데이

얼마 전 종영된 [나의 해방일지] 때문인지 국내에서 해방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해방을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해방의 개념은 20세기 후반부터 스웨덴의 성평등 정책 발전의 동력이 되어온 정치적 핵심 비전이기도 하다. 시민사회와 정치계는 성평등한 사회는 곧 남녀 모두 전통적 성역할에서 벗어나 동등하게 일하고 동등하게 돌볼 수 있는 ‘이중 해방’을 이룬 사회라는 데 동의했다. 스웨덴의 역사학자 Roger Klinth 는 이중해방에 대한 정치적 비전이 1974년 부모휴가(즉 한국의 육아휴직)를 도입하면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분석한다.1) 실제로 2021년 기준으로 부모휴가를 사용한 부모 중 남성은 46%에 달한다.2)

보편화된 스웨덴 부모휴가 제도

스웨덴에서는 부모에게 자녀당 총 480일의 부모휴가 권리를 부여한다. 2022년 10월 기준, 기존 연속 근무일 240일 이상 및 연 소득 최소 85,000 크로나(약 1천만 원)를 충족하는 부모는 총 480일 중 390일 간 월 임금소득의 77.6% (최대 일 1,027크로나, 약 13만 원)에 달하는 급여를 수령할 수 있다 3)​ 나머지 90일은 소득이나 기존 근로기간 상관없이 일 180크로나(약 2만3천원)의 정액급여가 지급된다. 앞서 제시한 조건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모든 부모는 하루 최소 250크로나(약 3만 원)의 부모휴가 급여를 받을 수 있다. 2021년에 태어난 모든 아동의 약 87%의 부모가 부모휴가를 사용했다.4) 급여 수준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든 부모가 부모휴가 제도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웨덴 아빠들의 부모휴가제도 사용 증가 요인 

남성들의 부모휴가 사용이 증가한 계기 중 하나는 할당제의 도입이다. 할당제는 1995년 30일로 도입되어 2002년에 60일, 2014년에 90일로 확대되었다. 스웨덴 정부는 총 480일의 부모휴가 기간을 부모 간 절반씩 나눠 각각 240일씩 나누어 사용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 중 정률 급여 기간 195일 중 105일은 부모 간에 자유롭게 권리를 양도할 수 있다. 나머지 90일은 양도가 불가능하며, 자녀가 12세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소멸한다. 또한 부모휴가 기간 중 80%는 자녀 나이 4세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기 때문에 육아 초기에 전략적으로 급여를 신청할 필요가 있다.​5)​ 이런 소멸 원칙 때문인지 2000년대 초부터 2010년 중반까지 국내에서 스웨덴 부모휴가의 할당제를 의무제인 것처럼 소개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그러나 스웨덴의 부모휴가 할당제도는 사실 한국 육아휴직 제도의 기존 구조와 동일하다. 한국은 오히려 남녀에게 각각 1년씩 육아휴직 기간을 할당하고 있으니 그 기간이 오히려 더 급진적으로 긴 셈이다.

부모 각각 1년이라는 상당히 급진적인 할당제 구조를 갖추고서도 국내에 스웨덴 할당제 제도의 도입을 논했던 상황이 상당히 모순적인데, 이는 한국 육아휴직 제도의 실용성이 낮은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 역시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도의 실용성은 어떻게 높일 것인가? 남성의 부모휴가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정책의 포괄성, 보편성과 같은 디자인 요소 외에도 경제적, 문화적, 인식적 요소들이 다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웨덴의 경험에서 찾은 근본적 함의는 아래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성평등한 육아문화 조성을 위한 네 가지 제언

 


ⓒ이미지투데이

 

 

부모 각각 1년이라는 상당히 급진적인 할당제 구조를 갖추고서도 국내에 스웨덴 할당제 제도의 도입을 논했던 상황이 상당히 모순적인데, 이는 한국 육아휴직 제도의 실용성이 낮은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 역시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도의 실용성은 어떻게 높일 것인가? 남성의 부모휴가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정책의 포괄성, 보편성과 같은 디자인 요소 외에도 경제적, 문화적, 인식적 요소들이 다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웨덴의 경험에서 찾은 근본적 함의는 아래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여성 고용률 증가 및 임금 격차 완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현재 시장구조 안에서 남성들의 육아 참여 촉진은 여성들이 가계 수입에 기여하는 수준의 증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충분치 않은 가구 소득은 남성들의 육아휴직 사용을 저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이다. 스웨덴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의 국회 입법안이나 국회의회록을 살펴보면 국내에도 스웨덴처럼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부모휴가 제도를 도입하면 아버지들이 육아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결국 출산율 증가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주장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반쪽 짜리 청사진이다. 실제로 스웨덴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남성들의 육아 참여가 활발한 편으로 평가될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고용률이 높다. 2020년 기준 스웨덴 여성들의 고용률은 유럽연합 국가들 사이에서 아이슬란드(79.2%) 다음으로 높은 78.3%를 기록했다.​6)

둘째,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육아의 주체로 규정하는 모든 프레임에 대한 철저한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이는 앞서 주장한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을 위해 마련되어야 할 인식적 기반이기도 하다. 스웨덴에서는 일찍이 1960년대부터 전통적인 성역할은 사회적 구성물일 뿐이라는 인식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성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전업주부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이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전문적인 공공 보육의 장점과 가정 보육의 한계에 대한 논의도 잇따랐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단순히 국가 경제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 이혼이나 사별처럼 개인이 삶에서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경제적 위험에 대한 대처, 즉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위한 방법으로서 힘을 얻었다. 반대로 남성들은 전통적인 남성성에서 벗어나 자녀를 잘 돌보는 "현대적인” 남성성을 수용할 것을 요구 받았다. 돌봄의 책임을 기존 남성성의 일부로 통합시키려는 노력은 담론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스웨덴 국회는 1973년 미혼 남성의 양육권을 인정하였고, 1977년 공동 양육권을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켰으며, 1998년에는 생부의 경우 자동으로 공동 친권을 부여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였다. 즉 새로운 남성성에 대한 담론이 일방적인 요구에 그치지 않도록 실질적으로 아버지로서의 남성들의 권리를 인정해준 것이다.

셋째, 사회 전반에 근로자의 의무를 능가하는 부모의 권리 및 성평등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이러한 합의 없이는 남성 역시 동등한 부모로 인식되기 어렵고, 이러한 문화적 뒷받침 없이는 남성들이 높은 권리의식을 가지고 직장에서 부모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이는 스웨덴에 지사를 둔 한국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아버지들의 자녀 돌봄과 관련된 제도의 활용 현황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7)​ 스웨덴의 가족정책 및 노동정책에 따라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한국 지사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아버지들은 한국의 노동문화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이들은 스웨덴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아버지들에 비해 아버지 육아 관련 정책을 더 적게 활용하고, 무엇보다도 해당 정책 활용에 대한 권리감 자체가 현저하게 낮은 경향이 있다. 스웨덴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국 아버지들이 상사로부터 가족을 우선시하라는 조언을 듣지만,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는 한국 아버지들은 자녀가 아파도 상사에게 말하고 일찍 퇴근하거나 자녀를 위한 병가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집에서 와이프가 전업주부로 일하는 경우 아버지들의 거리낌은 더욱 크게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성평등한 사회상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스웨덴의 경험은 그들이 지금까지 이룬 성과 외에도, 온전한 이중 해방의 사회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데 그 마지막 의의가 있다. 2021년 기준 480일 중 70%에 달하는 부모휴가 일수는 여전히 여성에 의해 사용되었다.8) 즉 부모휴가를 사용한 사람의 절반이 남성이라고 해서, 부모휴가 기간마저도 동등하게 나눠 사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일찍이 부모휴가제도에 할당제를 도입하면서 부모 각자가 비슷한 비율로 제도를 사용하도록 장려해 온 스웨덴 정부지만 진정한 이중해방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먼 것이다. 이 먼 길을 조금이라도 단축할 것인지, 아니면 더 멀리 돌아갈 것인지는 현재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저출생으로 인한 국가 위기를 극복해 보겠다는 애국심으로 자녀 계획을 세우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여성과 남성을 출산 및 국가 경제의 지속적 발전의 도구로서 보는 것은 국가 차원의 담론에 불과하다. 국가 구조 중심의 논의에서 내려와 우리가 지향하는 성평등한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이며, 이를 위해 개개인이 일상에서 어떤 의무와 권리를 실천하고 살아야 하는지 더 실질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1) Klinth, R. (2002). ​Göra pappa med barn: Den svenska pappapolitiken 1960-1995. Boréa.

2) Försäkringskassan. (2022). Socialförsäkringen i siffror 2022.

3) www.forsakringskassan.se

4) Försäkringskassan. (2022). Socialförsäkringen i siffror 2022.

5)김연진, 김진욱. (2022). 스웨덴은 어떻게 아버지친화적인 복지국가가 되었는가? 스웨덴의 남성 부모휴가정책 발전과정과 한국에의 함의. 한국사회복지조사연구 (73), 5-46.

6) Eurostat. (2022). Employment and activity by sex and age-annual data. https://ec.europa.eu/eurostat/databrowser/view/LFSI_EMP_A_H__custom_3657521/default/table?lang=en

7) Kim, Y.-J. (2022). Workplace matters: negotiating a sense of entitlement towards taking time off for childcare among Korean fathers working in Sweden. Families, Relationships and Societies, 11(3), 428–446.

8) Försäkringskassan. (2022). Socialförsäkringen i siffro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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