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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인구변동

2021-04-07

 

이상림(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일반적 이해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비율은 OECD 국가들 가운데 매우 낮은 수준이다. 우리보다 고령화 수준이 더 낮은 OECD 회원국들도 멕시코, 칠레, 터키 등 남미와 중동 일부 국가들과, 아일랜드나 룩셈부르크 등 유럽의 일부 소국(小國)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서구 선진국들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불과 30년 후인 2050년 경에는 한국은 노인인구비율이 40%를 넘으면서 일본을 앞서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나라가 된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변동의 속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모습’을 근거로 인구 고령화를 ‘복지로 조절’하거나 ‘일부 제도나 인식 개선으로 대응’ 할 수 있는 문제로 보는 것은 너무나도 안일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구를 단순히 숫자의 문제로만 해석하고, 인구변동의 직접적 영향만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청년인구 감소의 파장이 노동력이나 군병력 같은 직접적 ‘인구 부족’에 그칠까? 확실한 것은 인구변동의 파장은 사회적 맥락들을 따라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훨씬 더 광범위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기회에 ‘인구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려 한다. 인구학적 사건들은 인구감소, 시장축소, 1인가구 증가, ‘지방소멸’과 같은 일정한 경로들을 따라 일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경로들을 따라가다 보면 좀 더 구체적인 전망이 가능하다. 

인구변동의 파장은 사회적 맥락들을 따라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훨씬 더 광범위할 것이다. (사진출처 : 셔터스톡)

 

 

​우선 경제학적으로 고령화는 경제 활력의 저하와 생산/소비 인구의 감소를 초래하여 저성장의 구조적 원인이 된다. 하지만 조세수입 감소, 노인부양으로 인한 재정부족으로 정부는 재정정책 카드를 꺼내들기 어렵고, 또 인구감소로 인한 수요부족으로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펼치기도 힘들어진다. 이로 인한 경기침체는 저소득층에 더 큰 압박이 될 것이다. 게다가 내수시장 위축으로 우리 경제의 수출산업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면서 시장의 분배 기능은 더욱 작동하지 않는다. 이렇게 계층 격차가 더 커지겠지만, 다시 재정압박 때문에 정부는 적극적으로 복지지원을 확대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이렇게 고령화는 양극화 심화의 문제를 품고 있다. 

지방 청년인구의 유출이 더 심화되면서 지역은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더 빨라지고, 이에 따라 지자체의 복지 전달체계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지역주민이 누리는 복지 수준은 크게 떨어지지만, 정책 비용은 오히려 높아진다. 이에 따라 정책의 효율성과 주민의 평등권 사이의 논란이 유발되고, 이는 지방예산 분배를 둘러싼 대도시-농촌과 중소도시 간의 갈등으로 확대된다. 

고령화로 인한 ‘지방소멸’의 위기는 ‘생활복지’ 위기라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일정 넓이에서 일정 수준의 인구를 유지하지 못하는 지역들에서는 상하수도, 도로, 전기 등의 유지보수 비용이 치솟으면서 기초적 생활 여건마저 위협받게 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장 유통망도 축소(합리화)되면서, 주민들은 식품이나 생필품, 그리고 난방 등의 구매가 심각하게 어려워진다. 이제 우리가 당연하게 이용하던 재화나 서비스의 구입이 정부나 지자체가 담당할 ‘복지’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미 일부 농촌지역에서는 이러한 사업을 시행 중에 있다. 이러한 ‘생활복지’의 위기는 농촌뿐만 아니라, 쇠퇴하고 있는 구도시의 주거지역이나,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입주자가 줄어든 노후 아파트들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고령화는 이제 ‘쇼핑난민’, ‘난방난민’의 문제가 된다.​

 경제학적으로 고령화는 경제 활력의 저하와 생산/소비 인구의 감소를 초래하여 저성장의 구조적 원인이 된다.(사진출처:클립아트코리아)

 

 

​사별, 비혼, 이혼 등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지역사회 관계망이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지역 공동체 자원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복지 효율화를 위해 추진하는 커뮤니티 케어는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더불어 1인가구 증가에 따라 의료 서비스 영역에서 생활돌봄에 대한 필요도 높아지면서, 의료-돌봄 체계에는 큰 변화가 요구된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 서비스 영역뿐만 아니라, 보험 등 금융분야로도 확대된다. 

보건영역에서도 만성질환 노인의 증가로 인한 건강보험 위기뿐만 아니라, 새로운 양상의 문제들이 나타난다.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 확대,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감염성 질병의 위험 증가와 지역차원의 방역체계 요구, 헌혈하는 젊은 인구의 감소와 수혈 수요의 증가로 인한 수혈용 혈액 부족, 예방적 조처의 확대로 동네 헬스센터 등 비의료 기관의 역할 증대 등 새로운 현안들이 다양하게 출현할 수 있다. 

이상의 예들은 인구 고령화로 발생할 수 있는 보건복지 영역에서의 특정 사례들에 불과하며, 인구변동의 진전에 따라 새로운 도전들이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다. 그리고 인구변동에 따른 사회적 부담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데, 특히 청년세대, 지방, 빈곤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불평등성은 인구변동에 따른 도전들을 더욱 복잡하고, 대처하기 어렵게 만든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인구-사회 변화에 대한 체계적 예측에 근거한 선제적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과 인구변동의 상호관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책 담당자의 ‘인구감수성’ 역량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저출산-고령화의 인구정책을 넘어, 종합적 ‘인구전략’으로 우리의 대응체계가 확대되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인구학적 도전들은 보건복지의 영역을 넘어 재정, 경제, 사회, 정치 등의 다른 영역들과 복합적으로 연동되어 전에 없던 양상으로 발전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러한 도전들의 상당 부분은 사회갈등으로 발현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구조적 갈등들을 관리하고, 사회적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합리적 정치 체계 마련 역시 고령화에 대한 필수적 준비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은 국회보3월호에 실린 ‘고령화에 따른 복지분야의 도전들’을 수정 및 가필하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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