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아이콘

위원회 칼럼

함께 일하고 돌보는 사회를 위한 다양한 상상력

2021-04-21

문정희(부산여성가족개발원)

 

 

결혼과 출산이 남녀 모두의 생애 경력에 장애나 부담이 되지 않게 하는 것. 제4차 기본계획의 핵심 중 하나다. ©클립아트코리아

 

 

소설적 상상력은 현실을 압도한다. 만약 5년 마다 혼인관계를 유지할지 중단할지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정여랑 작가는 《5년 후》라는 소설에서 ‘결혼 갱신제’를 도입한 대한민국을 상상했다.

소설을 좀 더 따라 가보자. 세계 각국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 끝에 결혼제도 수정을 통한 사회구조 변화를 시도한다. 혼인 신고 시 <종신제>와 <갱신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갱신제>를 선택할 경우 5년 마다 혼인 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대한민국도 과감히 이 제도를 도입한다.

 

 

작가는 결혼 제도 변화가 가져오는 일상생활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묘사한다. 임신, 출산, 육아를 결정하는 누구라도 그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기조 아래 정부는 사회체질을 개선해 나간다. 돌봄 인력과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서비스는 필요한 곳에 적시에 전달된다. 임신을 하면 임신부와 파트너들에게 매달 교육과 상담이 제공된다. 그리고 회사에는 임신부의 신체적, 심리적 보호를 위한 지침이 전달된다. 회사는 대체인력 운영을 준비하고 국가는 그 모든 비용을 지불한다. 아이를 돌보던 조부모가 입원하면 전담 돌봄 직원이 가정으로 방문하여 아이를 챙긴다. 같이 사는 삼촌의 직장에까지 협조 공문이 발송되어 공동 양육자로서 근무시간과 업무 난이도를 조정한다.

 

 

소설 속 내용은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과 많이 닮아 있다. 이번 4차 기본계획은 결혼과 출산이 남녀 모두의 생애경력에 장애나 부담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구나 함께 돌볼 수 있고, 누구나 함께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성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성평등 경영 공표제’를 도입하고, 일-양육 병행이 가능한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육아휴직의 권리와 급여를 확대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있어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영아수당’을 도입한다. 나아가 정상가족의 폐쇄적 규범을 벗어나 다양한 가족의 제도적 수용성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 법제도를 개편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처럼 이번 4차 기본계획은 오래된 인식과 제도의 틀을 깨는 작업을 시도했다. 청년을 비롯한 현장과 학계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으려 노력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고 단단하다. 교육과 고용시장에서의 경쟁은 꺼질 줄 모르는 불길과 같고, 많은 이들에게 삶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다. 현실은 계획이 담고 있는 것보다 더 암울한 방향으로 더 급속하게 전개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상상해야 한다. 칸트는 감성과 지성을 연결해주는 것이 상상력이며, 상상력을 통해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고 나아가 창조적인 응용을 할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결혼종신제와 결혼갱신제를 결혼 단계부터 결정해야하는 소설 속 설정이 현실이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어쩌면 당연한 사회로 한발짝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상상력이 해법이 될 수도 있겠다. 출산과 육아문제만큼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상상하고 계속해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상상력의 힘을 굳게 믿었던 칸트를 소환하든지, 페미니스트 소설가들의 소설적 창의력을 동원하든지해서라도 더 풍부한 창조적 대안이 시급하다.

 


이번 주말에는 또 다른 대안적 삶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 줄 <안토니아스 라인> 영화 한편 보는 건 어떨까.

 

 

맨위로 올라가기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