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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아동이 행복한 사회환경 조성을 꿈꾼다

2021-05-04

 

정익중(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금까지 아동은 부모의 돌봄 부담이나 보호 대상으로만 간주되었을 뿐 아동이 권리의 주체일 수 있다는 점은 많이 간과되었던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아동의 관점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아동권리 관점으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첫 발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동돌봄은 어른들에게 행복이기보다 부담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해결될 것 같은데 가정과 학교, 지역 사이에서 떠넘기기가 계속되고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하교시간을 조정하여 돌봄이나 사교육이 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지역사회는 돌봄의 수요와 공급을 균형 맞추며, 사회는 돌봄이 필요한 가정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등 방안을 통해 충분히 아이를 돌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는 지자체에서, 부모 및 지자체를 비롯한 많은 주체들은 학교에서 돌봄 책임을 맡아주길 바라며 서로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과정이 계속되고 있다.

아동돌봄서비스는 부처 간 칸막이 현상, 사일로 효과(silo effect)가 심해 서비스 전달체계가 비효율적이다. 현재 아동돌봄서비스는 방과후 기관 서비스인 ‘온종일돌봄’ 체계(보건복지부의 지역아동센터 및 다함께돌봄센터, 교육부의 초등돌봄교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와 개별돌봄서비스인 아이돌봄서비스(여성가족부)로 총 3개 부처 5개 돌봄체계로 분산되어 있다. 그러나 부처간, 돌봄체계간의 연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서비스가 적절히 조정되지 못하고 행·재정자원 활용의 비효율성을 야기하고 있다. 유사한 서비스지만 사업별로 명칭, 대상연령, 운영방식이 상이하여, 소비자들은 이 복잡한 체계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2007년부터 아동돌봄서비스 통합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공급자 간의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모든 아동에게 돌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중앙부처나 돌봄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그 첫 단추로서 적어도 이용자가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명칭을 통일하여 소비자의 불편함이나 이용자의 낙인을 줄여야 할 것이다. 돌봄이 필요하면 방과후 기관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계조정이 가능하도록 진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부처가 통합될 수 없다면 지자체 단위에서 관련 예산을 통합하여 유연하게 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출처:셔터스톡

​또한 아동은 가정에서 부모가 돌봐야 한다는 생각도 사회에 만연해있다. 하지만 가정에서 학대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많다. 2019년 전국적으로 아동학대 사례는 3만여 건이었고 지금도 한 달에 3-4명의 아동이 가정에서 학대로 사망하고 있다. 자녀 양육이 쉽다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육이 어렵다고 모든 보호자가 자녀에게 욕하거나 때리지는 않는다.

모든 아동학대는 체벌로부터 시작되었다. 1979년 스웨덴에서 처음 체벌을 금지한 이후, 2021년 기준 전 세계 61개 국가에서 체벌이 금지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2021년 1월 민법 915조 징계권 조항의 삭제로 이 방향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체벌 금지가 법령에 명문화되지 않아 체벌금지국가에는 속하지 못하고 있다.

훈육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훈육이라는 핑계로 자녀를 학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대는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이는 성장 과정 중에 있어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것이지 무시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해서는 안되는 것들은 아이들에게도 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성인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아이를 때리고 욕설로 혼내는 방식으로 훈육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왜 때려서라도 훈육하지 않느냐고 보호자를 책망하는 문화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자녀양육이 힘들다면 정부는 관련 인프라를 마련해 보호자가 상담이나 부모교육을 통해 올바른 양육방법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는 아동학대보호 인프라 확충이 강조되었지만 양육문화를 바꾸는 방안도 추가되길 바란다. 기본계획처럼 공부는 줄이고 놀이권을 강조하며 아동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문화를 바꿔나가는 작업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놀이권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놀이권이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교육과 돌봄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놀이의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간 맞춰 놀기 어렵다. 따라서 초등학생 하교시간을 연장하여 휴식시간, 점심시간을 늘려 아이들이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학교에 실내 놀이공간이 확충되어야 놀이권이 보장될 수 있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이번에도 말뿐인 놀이권 보장이 될 것이다.

 


출처 : 셔터스톡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동정책에 찬성하지만 이 아동들을 지원하는 인력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대가정은 부모가 있어도 제대로 돌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아이들은 가정 외에서 다른 인력에 의해 보호되고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학대부모에서 아이를 분리시키면 끝이 아니라 돌봄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위기아동들이 많이 이용하는 공동생활가정(그룹홈), 쉼터 등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돌보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 대신 돌보는 인력이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돌봄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기며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며, 특히 다수의 아이들을 동시에 돌보는 일은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하루라도 제대로 돌봄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이 인력들이 일하는 아동분야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근무여건이 열악하여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유인하지도, 장기근속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열악한 근무조건은 인력의 소진과 이직을 유발하기 쉬우며, 업무의 안정성을 떨어뜨린다.

인력의 잦은 교체는 보호자가 자주 바뀌는 것과 같이 아동의 정서불안이나 기본적 신뢰감의 상실 등 심리적 외상을 일으키기 쉽다. 아동서비스 인력에 대한 낮은 처우는 아동에게 제공될 서비스의 질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아동에게 사회적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인했으므로 향후에는 아동서비스 인력의 노동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기 위한 일자리의 질 개선이 필요하다. 국가가 교육영역에서는 모범고용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지만 아동돌봄 영역에서는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기본계획에 반영된 돌봄노동자의 처우개선을 환영하고 꼭 해결되기 바란다. 교육이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듯이 아동정책은 아동인력의 질을 절대 넘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아동정책에 대해서는 여야의 입장 차이도 없고, 격렬한 반대나 적극적 찬성도 없는 경우가 많다. 초기 투자비용에 비해 그 효과가 늦게 나타난다는 점, 아동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워 제 3자에 의해 대변될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의 이유로 아동정책에 대해 구체적인 추진세력을 갖기도 어렵다. 또한 아동과 관련해서는 사회에서 충분히 지원하고 있다는 생각도 팽배하다.

아동수당, 영유아건강검진, 무상보육, 의무교육 등으로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아동·가족복지 공공지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로서 OECD 회원국 평균인 2.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보육을 제외하면 0.2%로 OECD 국가 평균인 1.4%에 1/7에 불과하다. 아직 OECD 평균 정도를 지출하기에도 멀었다.

예전과 달리 아동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동정책이 제대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아동서비스 인력을 바로 세워야 하고, 예산의 획기적인 증가가 선결되어야 한다. 부처별로 분절적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체계를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씩 차근차근 아동중심으로, 아동의 행복한 성장과 발달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할 끈기가 필요하다.

그 시작은 언제나 적정 전문인력과 예산 확보이다. 더 이상 아동서비스 인력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지 말고, 아동정책은 반드시 아동서비스 인력에 대한 지원과 함께 가야 한다. ‘아동학대의 사회경제적 비용 추계’, ‘아동빈곤의 사회경제적 비용 추계’ 연구에 의하면 학대나 빈곤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부담하고 있는 연간 비용은 최소 3,899억원에서 최대 99조 6,85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눈앞의 예산을 아끼려다가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아동정책에서 인력과 예산에 대한 고민이 충분치 않다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 이 글은 필자의 ‘아동복지론’과 관련 칼럼 등에 실린 글을 수정 및 가필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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