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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일터 성평등’이 저출산 해법의 시작(한겨레신문, 2020.12.21)

2020-12-22

박기남(한국여성연구소 이사)

​올해 한 설문조사에서 비혼 여성들은 10명 중 9명이 ‘결혼은 선택’이라고 응답했다. 또 다른 연구결과에서 2030 청년세대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 ‘일’이라고 대답했다. 무한경쟁의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젊은이들은 성별을 떠나서 모두 ‘일’ 중심적 생애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 한 몸도 건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은 사치이고 무책임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청년세대가 ‘일’과 ‘결혼’을 양립할 수 없는 ‘갈등’이 아니라 화해 가능한 ‘균형’으로 해석하려면 우리 사회는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할까? 무엇보다도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격차 해소, 일터에서 안전함 보장, 돌봄노동의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종 여성고용 지표의 악화와 가족 돌봄의 여성 전담 현실은 출산을 기피하는 선택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히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청년의 일 중심적 삶의 변화를 반영했다. 개인의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로의 변화를 목표에 명시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누적되어온 노동시장의 성불평등에 주목하고, 여성들이 일터에서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권 보장 방안을 담고 있다.

첫째, 일터에서의 성별 격차 해소를 위해 ‘성평등 경영공표제’를 도입했다. 성별 임금격차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2018년 현재 34.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평균 12.9%) 중 꼴찌이다. 임금격차의 원인은 채용 단계 때 여성 기피 현상, 저임금 직종과 비정규직에 집중된 여성 일자리, 여성 임원의 낮은 비율 등 매우 복합적이다. 성평등 경영공표제는 개별 기업의 경영공시 정보인 ‘채용-임직원-임금’ 항목에서 성별 격차를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불합리한 성차별을 시정하는 제반 노력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성평등노동공시제와 프랑스의 성평등고용인덱스처럼 세계적인 추세 역시 기업 내 성별 격차 자체에 주목하여 성차별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둘째, 직장 내 성차별·성희롱 피해 구제를 강화하였다. 성차별·성희롱 사건은 대부분 불균형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며,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 불안정한 고용에 집중되어 있는 여성들에게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이다. 은행권 대규모 채용비리(2018년 금감원 조사), 공공기관 채용비리(2019년 감사원 감사), 남녀별 직종 배치 후 여성에게 낮은 호봉 적용 등 임금·승진 차별(2019년, 지역 방송사) 등 고용상 성차별·성희롱 사례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성차별·성희롱 구제기구인 인권위원회의 차별시정 권고는 강제력이 없고, 법원 판결은 시간·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한계가 있었다. 성차별·성희롱 사건처리의 신속성 및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위원회 내에 성차별·성희롱 구제절차를 신설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강화했다.

셋째, 여성이 집중되어 있는 돌봄노동 분야의 일자리 질 개선 과제가 포함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우리는 돌봄노동이 생산노동만큼이나 우리 삶의 중요한 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가절하되는 돌봄노동을 생존에 필수적인 노동으로 재평가하여, 돌봄노동자에게 적정한 처우와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큰 방향은 정해졌다. 이제는 일터에서의 성평등 노동권 실현을 위해 부처 간 협업과 시민단체의 모니터링 및 민관 거버넌스를 활성화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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