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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보편적 노동권의 시작, 플랫폼종사자 보호부터

2021-09-01

권오성(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

 


 

 

■ 플랫폼 경제의 도래

최근 급속하게 발전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그때그때의 수요에 맞춰 단기적으로 노동력을 활용하는 디지털 플랫폼 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그 과정에서 디지털 플랫폼에서 일감을 구해 일하는 사람(이하 편의상 “플랫폼종사자”라고 한다)의 규모도 급속하게 증가하여 좁게는 약 22만명에서 넓게는 179만명(취업자의 7.4%)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20. 노동연구원). 그런데 이러한 플랫폼종사자가 일을 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노동법이 예상하던 일하는 방식, 즉 하나의 기업에 소속되어 기업의 지시를 받아 노동을 제공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에 주목하여 플랫폼종사자는 ‘근로자’가 아니라 ‘프리랜서’에 해당하므로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플랫폼종사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삶이 전통적인 근로자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의 제한 등 가장 기본적인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여 전통적인 근로자보다 더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저출생 상황 속에서 출산·육아지원에서 만큼은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기본적인 출산・육아지원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배달 라이더는 대표적인 플랫폼종사자다. ©클립아트코리아

 

 

■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플랫폼종사자

다양한 모습의 ‘플랫폼종사자’의 등장이 전통적인 노동법 체계에 던지는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노동법의 보호대상인 ‘근로자’로 볼 수 있겠는가이다. 전통적인 기업이 자신의 근로자에게 구체적으로 업무지시를 하던 것과는 달리, 디지털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종사자에게 직접적인 통제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① 일을 할지 말지를 플랫폼종사자에게 선택하게 하고(배달 라이더들이 호출에 응답하는 행위), ② 일을 하는 때에도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하기보다 과업을 제시한 후 매뉴얼에 따라 일하도록 하며(번역 플랫폼은 번역할 문서만 제공할 뿐 용어 등을 세세히 지시하지 않음), ③ 고객에게 일의 결과를 평가하게 한다(고객이 별점을 매기는 방식). 이러한 과정에서 ① 플랫폼종사자가 플랫폼 기업의 호출에 응답하는 행위는 자발적 ‘동의’로 평가되고, ②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플랫폼 기업의 통제력이 희석되며, ③ 일의 결과에 대한 평가도 플랫폼 기업이 하지 않게 되어 전통적인 근로자의 속성인 ‘인적 종속성’이 옅어지게 된다. 그 결과 플랫폼 경제에서는 기업에 종속되어 일하는 근로자와 독립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는 자영업자 사이의 경계가 극도로 모호해 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모호성 자체가 아니라, 이 모호성의 이중성이다. 이러한 모호성은 플랫폼종사자에게는 노동법 등 법률의 보호를 상실시키는 위협으로 작용한다. 반면,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게는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그 결과 플랫폼 기업은 스마트폰의 화면 뒤에 숨어버리고, 플랫폼종사자는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며 플랫폼 기업이 보낼 신호만 기다릴 뿐이다.

노동법상 책임의 회피에 성공한 플랫폼 기업은 마땅히 스스로 부담했어야 하는 비용을 플랫폼종사자에게 전가한다. 이를 통해 비용을 줄인 플랫폼 기업이 노동법상 책임을 다하고 있는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결국, 다른 기업들도 경쟁에서 불리해지지 않기 위해 노동법상 책임의 회피를 위해 다양한 방책을 궁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로자 계층은 점점 더 그 수가 적어질 것이고, 반면 플랫폼종사자의 수는 증가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중산층 감소와 소득 불평등의 심화를 불러올 것이고, 종국에는 사회적 연대를 느슨하게 하여 복지국가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법적 토대 마련 필요

노동법의 보호 대상에 관한 전통적인 인식은 기업의 통제 아래서 일하는 사람만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가 불러온 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모호성으로 인하여, 이러한 전통적인 인식을 계속 고집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근로자보다 취약한 지위에 있는 다수의 플랫폼종사자를 법의 바깥에 두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그 일하는 방식이 어떠한가를 묻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법적 보호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하여 근로자와 근로자로 평가받지 못하는 일하는 사람 사이의 법적 보호의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와 동시에 당연히 근로자로 보아 마땅한 플랫폼종사자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부당하게 판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근로자와 타인을 위하여 일하지만 근로자로 인정되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보호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고용상 지위나 일하는 방식을 묻지 않고 ‘일하는 사람’ 또는 ‘자신의 노무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모두를 보호 대상으로 하는 보다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법률을 제정하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21. 3. 18. 장철민 의원의 대표발의로 제출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은 이러한 맥락에서 마련된 것이다. 위 법률안은 플랫폼종사자의 권리장전의 성격을 갖는 조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법률안 제20조는 “플랫폼 이용 사업자는 플랫폼 종사자의 성(性)ㆍ국적ㆍ신앙ㆍ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1조는 “플랫폼 이용 사업자는 플랫폼 종사자가 이 법 또는 관계법령에 따른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제22조는 “플랫폼 이용 사업자는 플랫폼 종사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제14조제1항에 따른 계약에서 정한 안전과 건강 보호에 관한 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3조는 괴롭힘 등의 금지를, 제24조는 임신ㆍ출산ㆍ육아 등에 대한 보호를, 제25조는 개인정보 및 사생활의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들은 ‘모든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노동법에 관한 구상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어야 할 사항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은 향후 ‘모든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노동법제 도입의 마중물로 기능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플랫폼종사자의 보호와 지원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며, 고용보험이나 산업재해보상과 관련해서는 이미 입법이 이루어진 사항도 있다. 플랫폼종사자의 취약성을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한 보호를 더 지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들을 ‘어떻게(how)’ 보호할 것인가이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완벽한 답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플랫폼종사자의 취약성을 줄이는 의미 있는 입법적 개선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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