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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전국민 고용보험, 육아휴직이 가능한 이유

2022-05-17

 

박은정(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

 


 

 

 남녀고용평등법과 함께 탄생한 육아휴직제도 

 

 

우리나라의 육아휴직제도는 남녀고용평등법 제정과 함께 시작되었고, 남녀고용평등법의 발전과 함께 확대되고 있다. 육아휴직제도가 다른 법이 아닌 남녀고용평등법 제정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법이 “고용에 있어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 및 대우를 보장하는 한편 모성을 보호하고 직업능력을 개발하여 근로여성의 지위향상과 복지증진에 기여함을 목적”(1987년 제정, 남녀고용평등법 제1조)으로 한다는 것과 우리나라의 M자형 고용곡선을 기억한다면, 육아휴직제도가 남녀고용평등법을 통해 도모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남녀고용평등법은 1995년 이후 여성근로자뿐 아니라 남성근로자도 육아휴직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육아에 대한 책임이 여성근로자에게만 전가되는 현실에 대한 개선책이고, 또한 남성근로자도 육아의 주체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비록 현실적인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남녀고용평등법상 육아휴직제도에 대한 급여제도를 고용보험제도가 담당하고 있는 것은 육아휴직제도가 근로자들의 내적역량에 따른 결합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초를 잡는 역할을 한다.1) 육아휴직급여를 반드시 고용보험제도를 통해 실현해야 할 당위성은 없지만, 고용보험제도를 통해 육아휴직급여를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사회보험체계 내에서 육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역량의 실패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은 1995년 이후 여성근로자뿐 아니라 남성근로자도 육아휴직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이미지투데이

 

 고용보험법과 육아휴직제도 적용의 한계 

 

 

남녀고용평등법은 ‘근로자’란 “사업주에게 고용된 사람과 취업할 의사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사람은 현재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제한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일부 규정을 제외하고 남녀고용평등법의 근로자 개념을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접근방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육아휴직기 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는 사람들로서는 육아휴직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남녀고용평등법상 근로자 개념을 확장하고, 따라서 이 법이 규정하는 육아휴직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이외의 “고용된 사람”에게도 보장된 것이라고 해석을 하더라도, 육아휴직기 소득을 담당하고 있는 고용보험제도와의 관계 하에서 육아휴직제도는 고용보험제도를 실효적으로 적용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육아휴직급여의 지급이 실시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행 고용보험제도는 근로자가 아닌 예술인이나 노무제공자에 대해서도 적용되기는 하지만, 육아휴직급여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용보험제도 적용대상이 되더라도 고용보험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이외의 사람에 대한 육아휴직급여제도를 통한 역량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무지한 상태다.

 

 

 ‘근로자’를 넘어 ‘일하는 사람’ 모두를 위하여 

 

 

고용의 기반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같이 인적으로 종속되어 근로를 제공하던 사람들에게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근로기준법과 같은 고용보호법제가 세계 각지에서 태동하던 시기와 그 이후 약 100년간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이나 고용보험법이 제정되던 시기는 그 100년에 포함되는 시기라고 할 것인데, 최소한 2000년대 이후 고용의 기반은 상당히 크게 변하고 있다.

최근 고용보험법이 개정되면서 노무제공자와 같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사람들을 그 적용대상으로 포섭한 것은 고용 개념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급여제도의 적용대상이 확대되지 않은 것은 고용보험법상 고용 개념의 변화가 남녀고용평등법상 근로자 개념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남녀고용평등법이 근로자를 “사업주에게 고용된 사람” 등으로 규정함으로써 근로기준법의 적용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법의 적용 대상에서의 변화를 도모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육아휴직급여의 재정적 기반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와 함께 현재 사업주와의 종속적 고용관계 하에 놓여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육아휴직급여의 관리가능성 문제가 놓여 있기도 하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반적 사회보험세제로의 전환 등 사회보험체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기에 완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2) 다른 한편으로 최소한 육아휴직제도가 갖고 있는 개인의 고용상 역량 보호는 합계출산율 0.8명대인 현재 우리 사회의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적 정책방향으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을 넘어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모두에게 당연한 육아휴직의 가능성 

 

 

육아휴직제도는 단순히 어떤 개인에게 자신의 자녀를 직접 양육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 제도는 고용의 유지 가능성을 보호하는 것이고, 고용 유지 가능성은 일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개인의 역량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로써 누구에게나 열린 역량개발의 가능성은, 어떤 일을 선택하더라도 평등한 역량개발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선택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고용의 기회를 확대시켜 주는 것이다. 육아휴직제도가 근로자를 넘어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할 당위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개개인에게는 그러한 기회의 확대에 대한 책임을 지속적이고 형평에 맞게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될 것이다.

1) 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개인의 역량(capability)에 접근한다. 그래서 역량접근법이라고 이름 붙여진 누스바움의 철학적 개념은 삶의 질을 비교 평가하고 기본적 사회정의에 관한 이론을 세우기 위한 접근법이다. 이것은 선택과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회와 실질적 자유를 증진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주장한다. 누스바움은 특히 차별이나 소외의 결과인 역량 실패(capability failures)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누스바움의 ‘역량’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며 역동적인 사람의 상태를 나타내는 ‘내적역량’과, 내적역량에 기능을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상황이 더해진 ‘결합역량’으로 구분된다. 사회는 내적역량을 만드는 데는 능하지만 사람이 내적역량에 맞게 기능할 기회는 열어주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역량과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 정부와 공공정책의 시급한 과제이다(마사 누스바움, 「역량의 창조」). 누스바움의 역량개념에 기초해 보자면 사회가 한 사람의 출산과 육아에 대하여 어떤 정책을 취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 출산과 육아가 개인의 역량을 높이는 사회인지 아니면 역량실패를 이끄는 사회인지가 결정될 수 있다. 만약 여성이 자녀의 출산으로 인해 하고자 했던 것을 할 수 없게 된다면, 남성이 자녀의 육아로 인해 되고자 했던 것을 될 수 없게 된다면 그 사회는 역량접근에 실패한 사회가 될 것이다.

2)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1~’25)>에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에 따라 사회적 협의를 거쳐 육아휴직급여 대상을 임금근로자에 한정하지 않고 고용보험 가입 특고, 예술인, 플랫폼노동종사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으로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전문가 회의를 통해 필요 재원 마련, 대상별 지급 기준 등의 정책 개발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참고자료>

마사 누스바움(2015), 『역량의 창조(인간다운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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