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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칼럼

요즘 부모팁 9. 부모로서 아이에게 줄 것, 불안 아닌 희망

2021-06-14


첫아이는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는 집에서 낳았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늘과 바람과 숲을 누리는 어린 시절을 주고 싶어 아파트를 떠나 마당 있는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TV도 잘 나오지 않고 마을버스도 한 시간에 한 대 지나는 동네였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아홉 살, 다섯 살 그리고 갓 돌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몇 문장만으로도 특별한 출산관, 육아관이 느껴지지만 정작 그는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었고 내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신순화 님의 이야기입니다.  

 

 

 

# 아이들을 위했던 선택,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처음 본 순간 내가 찾던 집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날 저녁에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보여줬어요. 벽난로가 있고 마당이 있으니 아이들은 내일이라도 이사오자며 열광했죠.”

 

남편은 내켜하지 않았습니다. 집이 너무 크고 낡고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게다가 8년 동안 비어있던 집이었습니다. 남편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었지만 그는 그 집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힘든 일은 내가 다 하겠다고, 힘이드네 어쩌네 불평하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쓴 뒤에야 남편은 이사에 동의했습니다.

 

“막상 이사를 하니 어른인 나에게도 상상과 현실이 너무 달랐어요. 집주인도 이 집을 처음 세주는 거라 우왕좌왕했고 이사하는 날 날씨도 좋지 않았어요. 이사하고 적응하고 정리하는데 온 힘을 쏟을만큼 힘이 들었죠. 한겨울에 이사를 했는데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에요. 정말 정신이 나갈만큼 추웠어요.”

 

이제 막 돌을 넘긴 막내 이룸이가 걱정이었습니다. 오래된 집이라 웃풍이 심했습니다. 기어다닐 때 손이 시리지 않을지, 기저귀를 갈 때 춥진 않을지, 탈이 날까봐 모든 관심을 막내에게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섯 살인 둘째 윤정이에게서 나타났습니다. 바지에 실수를 하기 시작한 것. 아파트에서 단독주책으로 이사를 왔으니 화장실이 달라져 실수를 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점점 강도가 심해졌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둘째가 ‘나는 이 집이 싫어요. 아파트로 다시 가요’라고 자주 말했던 것이 기억났어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아니었던 거죠.”

 

아이 입장에서 완벽한 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껏 뛸 수 있고 강아지를 키울 수 있으니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섯 살 아이에게는 편안한 환경이 아닐 수도 있겠다, 적응이 힘들 수 있겠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위한 선택이니 당연히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고 믿은 것은 순전히 어른의 착각이었습니다.

 

“‘엄마가 좋으면 너도 좋을 줄 알았어. 네가 싫어할 줄은 정말 몰랐어. 엄마 때문에 고생해서 정말 미안해’ 사과하고 오래 안아줬어요.” 

윤정이는 봄이 되어서야 ‘이제 이 집이 조금 좋아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 공부?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 

 

윤정이와 이룸이는 혁신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논밭, 시내도 있고 도시랑 가깝지만 충분히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직접 계란을 부화시키고 닭도 키웁니다.

 

“특별한 교육관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저 내 초등학교를 떠올리면 행복하지 않았어요. 한 반에 70명 넘는 과밀학급이었고 부지기수로 맞았었어요. 촌지에 뇌물까지…. 내가 엄마가 되면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어요.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즈음이면 교육을 잘 받을 줄 알았어요. 아니었어요. 오히려 격차가 심해졌죠. 그게 싫었어요. 이 환경에서 학교를 보내면 나도 그렇게 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느슨한 학교를 찾았어요.” 

 

느슨하다고 표현했지만 공부를 안 시키는 건 아닙니다. 

“혁신학교는 공부를 많이 안 시킨다고들 생각하세요. 그럼 저는 ‘공부’가 무엇인가에 대해 되물어요. 보통 공부라고 하면 시험, 성적을 이야기하잖아요. 그게 공부의 전부는 아니에요. 살아가며 필요한 다른 공부가 더 많아요. 이 학교에서는 그런 공부를 시켜요. 닭을 키우게 하고, 불편한 아이를 돕게 해요. 그런데 이런 건 성적으로, 등수로 나오질 않으니 어른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저는 아이들이 충분히 좋은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혁신학교에 다니면서 사교육을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또한 사교육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가 원한다면 학원에 보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학원에 보내고, 보내지 않고를 부모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묻고 상의해 결정합니다. 얼마 전부터 윤정이는 친구들 몇 명과 그룹을 만들어 영어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교과서는 단순한데 숙제는 어려워요. 친구들은 다 해오는데 자기는 못하니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거죠. 영어는 배우고 싶은데 학원은 다니기 싫다고 해서 그룹을 만들었어요.” 

 

 

 

 

# 부모의 불안은 부모 안에서 해결하길 

 

그는 첫째 필규를 키우며 “본인에게서 필요가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필규는 혁신초등학교를 다니다 대안학교로 옮겼어요. 중학교도 대안학교로 진학했는데 그 학교는 영어 수학에 대한 기준이 아주 높아요. 입학했는데 따라가기 힘들어 하더라고요. 선배들보며 자극을 많이 받더니 무섭게 파고들기 시작하더군요. 본받고 싶은 선배, 어울리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는데 그 그룹에 들어가질 못하니 자존심 상해했어요. 1년 안에 저 그룹에 들어가겠다고 이야기하더니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갔죠. ‘너 그렇게 공부해서 어떻게 할래.’ ‘대학에나 들어가겠니?’라는 부모의 말은 아무 소용 없어요. 아이 스스로 내적 동기가 생길 때 무섭게 나아갑니다.” 

 

올해 필규는 16살.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4년만 지나면 스무 살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학교생활 열심히 하고 인정받던 선배들도 18살, 19살이 되니 ‘나 돈벌이 뭘로 하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나’ 고민하는 것을 보고 나 자신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자격증? 물었더니 조리사, 중장비자격증 등 이것저것 이야기해요. 왜 따려고 하냐고 물었더니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하더군요. 불안해하는 게 보여요. 자기 수준에서 고민하는 것도 보이고요. 그런 고민이 반가워요. 고민을 해야 무언가 나오니까요.”

 

아이보다 더 불안한 게 부모입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다그치게 됩니다. 그 또한 이제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말하는 아들이, 엄마에게 ‘내가 뭐가 됐으면 좋겠어요?’묻는 아들이 불안하지만 적어도 아들 앞에서는 불안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중입니다. 

 

“부모가 나서서 아이에게 불안을 심어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에 아이에게 ‘너 이렇게 공부 안하고 대학 가겠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껀데?’ 퍼부어요. 아직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수십년 후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주지 않고 두려움과 불안으로 꼭꼭 옥죄죠.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에게 불안이나 어른의 숙제를 미리 줄 필요는 없어요. 이제 겨우 16살이잖아요. 26살, 36살, 46살에 닥쳐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때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보다 지금 방황하고 뭐라도 느끼면 그게 더 좋은 거 아닐까요.”

 

그가 불안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부모이기에 아이 앞에서 쿨 한 척 하는 것뿐입니다. 

“제가 대범하거나 남다른 철학이 있거나 쟁여놓은 재산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지금은 아이가 부모를 믿는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희망을 가지고 힘을 내고 학교생활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본인이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면 결국 본인이 해결해 낼 거예요. 그 어려움을 미리부터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본인이 고민하고 경험한 시간의 힘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엄마들에게 아이에게 무얼 해줘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라고 조언했습니다. 

“다 해주려면 엄마가 죽어요. 화내지 말라고요? 전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저는 애들 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해요. 그리고 아이들 모아서 설명하고 이야기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화도 잘내지만 웃기도 잘해요.’ ‘우리 엄마는 울기도 잘하지만 장난도 잘 쳐요’라고 기억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지만 화를 참느라 집안 분위기가 냉랭해진다면, 그건 아니라고 봐요. 내가 생겨먹은대로 육아를 할 수밖에 없어요.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는 말에 얽매지 마세요. 아닌 척 애쓰느라 망가지는 것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아이들에게 고백할 때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집니다.”

 

 


 

 


부모여도, 괜찮아 시리즈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홍보자문단 틈틈이님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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