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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칼럼

[이제, 아빠니까 5화] 아빠의 웃음

2021-06-17

그냥 작가라는 타이틀을 쓰기에는 아직 작가로서의 깊이는 없는 것 같고, 또 주부라는 타이틀을 버리기엔 남자 주부로서의 표본이 되고 싶어 주부작가라는 수식어를 만든 이정수입니다.

그럼 아내와 초등학교 1학년 딸 그리고 작년 12월에 태어난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개그맨이자 주부작가 이정수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이정수 방송인

 


 【 주부작가 아빠의 하루일과 】 

이제 5개월 된 둘째가 아침형 아기라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요. 7시쯤 밥을 먹이자마자 첫째가 일어나면 등교 준비를 하죠. 그러고 나면 오전 동안은 둘째와의 시간. 점심 먹이고 낮잠을 자는 사이 빨래하고 청소하고 집안 정리하다 보면 금세 첫째 픽업하러 가야 할 시간이네요. 운이 좋아 아내가 집에 있으면 둘째를 집에 놓고 나가고, 그게 안되면 둘째와 함께 첫째 학원 라이드를 가는 데 그러다 보면 저녁이고 밥 먹고 아이들 씻기고 자는 게 저의 하루 사이클이에요.



【 집에서 환영받는 아빠 】

어떤 아빠들은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갈 때 망설이는 귀가공포증이 생긴다거나 밖에서 놀고 싶은 욕망이 있잖아요. 그건 사실 집이 편치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집에 있는 식구들도 편치 않았을 거고요.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는 아빠는 늘 밖을 배회할 수밖에 없죠.

제가 아빠 육아를 하면서 유별난 점은 가족 안에서 하는 일이 많다는 거예요. 종종 둘째가 가까이 사시는 할머니 집에 넘어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할머니 집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것도 전부 제가 해요. 아내가 혼자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경우가 없도록 회식 같은 외부 일정도 첫째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두 번밖에 없었네요.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겠죠? 집에서 잘하면 잘할수록 아내에게도 아이에게도 아빠의 존재감이 커집니다. 그런 존재감에 대한 만족과 동시에 결정적으로 내가 외부활동을 하는 즐거움만큼이나 집에 들어오는 즐거움도 생기죠. 집에 투자한 만큼 집에 있는 시간이 편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요즘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모든 가족이 반기러 뛰쳐나와요.

 

 


【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아빠 】

일단 저는 집에서 대단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약속을 쉽게 하는 편도 아니지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거든요. 주말에 놀이공원 가자고 약속을 했는데 몸이 아파서 혹은 날씨가 안 좋아서, 일정이 생겨서 취소한 경우가 거의 없어요.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도 말이죠. 이젠 아이에게 ‘아빠가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켜진다’라는 신뢰가 있어요. 물론,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겠죠? 그런 믿음이 생길 때까지 그렇게 한 거죠. 아내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즐거운 이벤트를 약속한 경우엔 아이에게 미리 얘기해줍니다. 예를 들어 한번은 만화카페에 데리고 간 적이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하는 거예요. ‘아빠 내일도 학원 끝나고 만화카페 갈 수 있어?’라고 물어보는데 시간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약속을 했죠. 그랬더니 학교 갈 때부터 들떠 있는 거예요. 만화카페에 가기 전까지 얼마나 즐거웠겠어요? 이런 약속은 꼭 지켜야죠. 하루에 있을 즐거운 일을 미리 머릿속에 심어주는 것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빠 스스로가 가족 안에서 자존감을 높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 스스로 행복해져라 】

‘네가 그거 해주면 내가 행복할 것 같아.’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게 아니죠.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가 해야죠.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하는지 얼마나 적극적인지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8년 가까이 그런 생각으로 육아를 했어요. 아빠 주부로서의 일상 속에서 스스로 어떻게 이 고된 하루하루를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거죠.

어느덧 그런 생각이 습관이 되다 보니 아내에게도 불만이 있으면 네가 하면 된다고 늘 이야기해요. 차갑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 제가 다 알아서 하기 때문에 불만 자체가 없어요. 생각해보면 내가 귀찮기 때문에 잔소리도 하는 게 아닐까요? 아내가 하기 싫은 청소도 각종 집안일도 미리미리 잔소리를 못하게 다 해놓습니다. 그래도 가끔 불만이 있죠.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잔소리를 들어야 돼?’ 이런 말을 하면 아내가 아차하고 바로 사과를 합니다.


 


【 수다를 떨자 】

제가 아빠 육아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내 아이가 다른 집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고 싶은데 그러려면 그 부모와 연락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양육자가 엄마이다 보니 엄마 연락처를 받아야 하는데, 엄마와 엄마끼리도 연락처를 받기가 쉽지 않은데, 아빠와 엄마는 더 어렵더라고요. 저처럼 뺀질뺀질하게 생긴 사람은 오해를 낳을 수도 있고요.(웃음)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아빠 육아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은 듯해요. 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아빠 육아자들을 더 응원해주고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첫째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서 다시 아이를 키우니까 산후우울증 같은 게 오더라고요. 잠도 못 자고 사이클도 뭉개지고 하니까 다 귀찮고 힘들었죠. 그래서 제가 생각한 해결책은 수다를 떠는 것이었어요. 저도 원래는 과묵한 사람이었는데 엄마 세계에서 소통하고 위로받으며 살아남으려면 아줌마가 되어야겠더라고요. 수다스럽지 않으면 이 판에 낄 수가 없으니까요. 아빠가 육아를 해서 생긴 단점들이 분명히 존재할 텐데 아빠가 육아를 하기 때문에 아이가 피해를 보진 말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빠들 스스로 수다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피하고 뻘쭘해하면 안 돼요. 수다는 결국 감정표현이기 때문에 수다가 늘면 아내와의 소통도 더 수월해진다는 사실!


 


【 즐거운 등교길 】

엄마 육아와 아빠 육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안전과 관련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아빠는 여차하면 뛰어가서 아이를 들쳐안을 수 있을 만한 체력적 여건이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풀어놓죠. 하지만 엄마들은 아이가 다치면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입에 조심하라는 표현이 담겨 있죠. 생각해보면 아이가 넘어졌을 때 ‘아! 이게 아픈 거구나. 그럼 다음부터는 조심해야지.’ 사실 이건 부모의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것도 아이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예방인지 사후관리인지 이런 건데 저는 개인적으로 사후관리 쪽이 아이에게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아이는 ‘안 된다! 아니야! 하지마!’ 소릴 거의 안 들어요. 일단 해봅니다. 그래서 다쳐보기도 하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안 다칩니다.

요즘 첫째는 제가 산 3인용 자전거로 등교를 해요. 저희 동네가 내리막길이 심한 편인데 너무 재밌어합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 더 속도를 냅니다. 저는 아이가 재밌어할 걸 아니까 이렇게 하는 거죠. 하지만 엄마들은 ‘떨어지면 어떻게 해’라고 생각해서 못하는 거고요. 아이러니한 건 이 자전거 이름이 원래 ‘엄마 자전거’란 이름으로 나왔어요. 어쨌거나 저에겐 충전식이라 내리막은 말할 것도 없고 오르막길에서도 속도가 나서 굉장히 요긴합니다.


 


【 진짜 행복한 웃음 】

행복강사, 육아전문가나 상담사들 이런 분들을 쭈욱 지켜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정작 집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밖에서는 사람들을 웃기는데 집에 오면 정작 말이 없는 개그맨처럼요. 가끔 개그맨 인터뷰할 때 당황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진지하시네요…’ 이런 얘기를 기자들이 할 때가 굉장히 많아요. 저는 그런 게 싫더라고요. 밖에서 웃기는 것보다 안에서 웃기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가족을 웃기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긴 하죠.

개그맨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웃을 거라는 나름의 노하우와 전술이 있긴 하죠. 그런데 한두 번이지 그게 익숙해지고 나면 더 이상 안 웃겠죠? 가족이 그런 겁니다. 가족은 이미 내가 그동안 쌓아두었던 애드립 기술을 다 알고 있죠. 아내는 더 그렇겠죠? 그러다 보니 내가 결혼하고 신혼 2년까지 행복하게 지낸 것도 참 잘 지낸 게 아닌가 싶어요.

가족 안에서 계속 웃음을 유지하기 위해 제가 생각한 것은 소재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어요. 부부가 아무리 소통이 잘 되고 할 얘기가 많아도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길 했잖아요. 그럴 경우 둘이 앉아서 술을 마시면 좀 덜 재밌죠. 그럴 때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거예요. 초대받은 사람의 이야기도 듣고 또 듣다 보면 내 추억이 떠올라서 나도 다른 이야길 할 때도 있고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게 집에서도 계속 웃음을 유지할 수 있는 노하우인 거죠.

마치 엠씨는 계속 있고 게스트를 계속 바꾸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같은 거죠. 여행을 가거나 어디 식당을 가거나 그런 주제는 다 똑같지만 사람만 바뀌는 유머의 모든 형식을 다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같은 주제인데도 사람이 바뀌니까 또 재밌다고 다들 보잖아요. 집도 마찬가지예요. 웃음의 소재가 고갈되었을 때 게임이든지 사람이든지 끌어들여서 변화를 줘야죠. 그런 노력을 통해 밖에서 웃는 사람이기 보다 집에서 계속 웃음을 유지하는 아빠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 하하하 】

오늘 부부싸움을 했는데 다음날 바로 ‘하하하’ 웃을 수는 없죠. 오늘 싸웠으면 하루 이틀 정도는 냉전이죠.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줄이기 위해 최단 시간에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 노하우가 있어야 집에서의 웃음을 더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많이 웃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톤을 높이는 게 좋아요.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일종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활력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로 인해 집안에서 냉전의 기운이 돌더라도 조금 더 신속하게 해결이 되기도 하고요.

꼭 부부싸움이 아니더라도 집안에 웃음의 기운을 들이기 위해 엄마를 집에서 내보내고 독박 육아를 해보는 것도 좋아요. 처음이 힘들지 하다 보면 할 만합니다. 아빠가 독박 육아를 하는 사이 하루 이틀이라도 아내는 잠시나마 자유로운 영혼이 됩니다. 그렇게 충전된 아내는 다시 착한 여자가 되어 웃음 가득 집으로 돌아오는 거죠. 그렇게 독박 육아를 몇 번 해보면 서로 한편이 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다음 이야기로 또 만나요~~~!! 

 

 


 

 

이 캠페인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그림에다가 함께 합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키워가는 아빠의 이야기.

매주 목요일, 그림에다 작가님이 평범한 아빠들의 육아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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