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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칼럼

“지역에 남아서 이런 일도 해볼 수 있구나 확신을 주고 싶어요!”

2021-11-19

“지역에 남아서 이런 일도 해볼 수 있구나 확신을 주고 싶어요!” 

 

- 박현정 스픽스 '주섬주섬 마을' 매니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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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의 위기는 수도권보다 지방에 더 크게 다가옵니다. 

청년이 수도권에 몰리면서 ‘지방소멸’이라는 말까지 들려오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주최했던 <8개 대통령직속위원회 토론회>에서는 “인구사회정책과 지역발전정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지방 청년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계속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지방의 활력을 함께 만들어나갈 이주 청년들의 존재도 중요합니다. 

지금 지방에는 귀농귀촌, 창직, 로컬크리에이터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지방살이를 시도하며, 

지방이 가진 매력을 재발견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청년, 지방에 살아도 괜찮아>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는 

전남의 문화기획회사 스픽스의 박현정 매니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섬마을 신안도에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주섬주섬마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접니다, 박현정. 청년들의 상상으로 키워가는 마을을 지원하고 있어요."

전남 목포와 신안의 안좌도를 오가며 3년째 활동중이죠. 안좌도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 스픽스와 안좌도의 인연은 3년 전부터 시작됐어요.

신안에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이 신안으로 여행을 떠날 때, 스픽스에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동물들이 신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다’였어요. 교육의 기회가 부족한 섬마을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동물매개 예술교육’을 하며 안좌도를 만났습니다. 신안의 여러 섬을 다니며 교육을 진행하면서 학부모들과 아이들이랑 많이 친해졌는데, 신기하게도 안좌도 아이들이 특별하게 그림을 잘 그리더라고요.

김환기 화백이 태어난 곳이라 그런가…?(웃음) 그렇게 저희는 안좌도라는 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요.

그러던 중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사업을 준비하게 되었고 안좌도에 청년들이 창작·창업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자 ‘주섬주섬마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귀신 나온다'는 버려진 관사를 우리 손으로 깨끗하게 치워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었다.


비포 & 애프터. 먼지 구덩이인 관사가 이렇게 아늑해졌어요!!! 

 

지내보니 안좌도, 어떤가요?

사실 처음엔 신안이라 해서 무서웠어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딜 만큼 용감한 스타일은 아니라서 처음엔 착잡했어요. 또 막상 신안에 들어오니 신안도 저희를 반기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가 살 수 있는 곳이 한 곳도 없었거든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수소문하다가 우연히 공무원들이 썼던, 버려진 관사를 얻게 됐어요. 들어가보니 벌레와 곰팡이가 가득했고,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그래도 신안에서 처음 얻게 된 공간이라 절대 떠날 수 없었죠. 그래서 다 같이 관사에 들어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치웠어요. 그렇게 깨끗한 게스트하우스와 강이 보이는 루프탑을 만들었을 때쯤에는 신안에 대한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신안에서 살 곳 하나 없었던 내가 내 손으로 고쳐 만든 게스트하우스가 생겼으니까요.

지금은 얼마나 애틋한지 몰라요. 최근에는 신안에 학생들이 떠나고 문을 닫은 폐교를 얻어 마을에 유일한 책방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일하며 책을 읽는 게 소소한 낙입니다.


목포 출신 다섯 명 젊은이들이 뭉친 스픽스는 동물을 주제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회사다. 

 

다들 수도권으로 가려 하는데 도리어 섬마을로 간 이유는 무언가요?

저는 전라도에 애착이 많아요. 가족들과 놀러간 계곡, 사장님과 둘러앉아 토스트를 먹으며 아침뉴스를 함께 보던 토스트 가게, 하교 후에 친구들과 버스 타러 갔던 어둑어둑한 길, 선배들과 신나게 놀았던 후문 거리 등 답변을 하는 지금도 마음이 뭉클해지는데요. 제가 사랑하는 전라남도, 그중에서도 서남해권은 고용위기 지역이자 소멸위기에 놓인 지역이 많아요.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는 걸 보다 보니 저라도 이 지역에 남아서 비어가는 지역을 지켜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꿈을 이루기 위해”라는 스픽스의 슬로건을 보고 이 회사에 입사하면 지역에 남아서 지역을 지키는 일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스픽스에 입사해서 사라져가는 섬에 청년들의 마을을 만들고 있습니다.


플레이어 3기 모습

 

‘주섬주섬마을’은 어떤 활동인지 소개해주세요.

저희 스픽스에는 동물덕후들이 모여 있어요. 동물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마을을 만들면서 동물원의 ‘zoo’, 섬마을의 ‘섬’을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에요. 또 청년들이 짐을 싸서 주섬주섬 모인다는 의미도 있죠. 

어떤 이는 마을에 없던 동물원을 만들었고, 어떤 이는 전국에서 책을 기증받아서 마을에 없던 책방을 만들고 있어요.

어떤 이는 목공방을 만들어서 동물들을 위한 집을 만들고 있고, 또 어떤 이는 실크스크린 공방을 만들어서 예쁜 편집숍을 꾸미면서 버킷리스트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한데, 주저할 만한 이유도 정말 많기에, 저희는 청년들에게 마치 게임 속 세상처럼 거침없이 섬마을에 접속해서 상상을 플레이(play)해보라는 의미에서 입주하는 청년들을 플레이어(player)라고 부르고 있고요.

어떤 플레이어들이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플레이어는 누군가요?

저희는 1기, 2기로 플레이어분들을 모집해서 현재 25명 정도가 마을 프로젝트를 수행중이거나 완료했어요.

그중에서 명산 작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자신의 이름을 건 사진전을 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9월에 첫 사진전 <신안전>을 개최했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의미있었어요.

산이는 저희들 중 가장 먼저 일어나서 집을 나섰어요. 안좌도의 주민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과가 아침 일찍 시작되잖아요.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혼자서 인사를 드리며 돌아다니고, 안좌도의 교회에 등록해 다니기도 했고요. 그러다 친해진 할머니가 산이의 이야기를 듣고 창고 한편을 작업실로 쓰라고 내주셨어요. 할머니께서 거동이 불편하였기에, 사실 그 창고는 폐기물들과 음식물들이 가득했죠.

저희는 여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창고를 치웠어요. 치우고 보니까 꽤나 널찍한, 조금 과장을 보태면 ‘인스타 갬성’이 있는 창고가 나오더라고요. 산이는 그곳에서 할머니의 사진을 찍었어요. 할머니의 얼굴, 할머니의 옷장, 할머니의 친구분들이 담긴 주소록 등등.  할머니의 추억을 할머니의 집에서 전시했던 정말 의미 있는 사진전이었죠. 

명산 작가의 전사 포스터와 전시장 모습(위).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진행한 우리마을 잔치, 그리고 산이 작가와 인연을 맺으신 할머니(아래)

그 외에도 편지를 좋아하는 가을님은 편지실링공방을 만들어 팔금면에 편지문화를 퍼뜨리고 있어요.

글쓰기 힘드신 어르신을 대상으로 편지를 대신 작성해서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달하기도 하고요.

또 마을의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쓰러 온 제천 작가님도 계세요. 우리 마을 입주민들의 이야기를 하려면 밤새 해도 모자랄 것 같아요.

 

청년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요?

글쎄요. ​지역을 사랑하는 이들이 지역에 남아서도 뒤쳐지지 않고 버킷리스트를 해낼 수 있다는 확신 아닐까요?

지역에서 이런 일도 해볼 수 있구나. 지역에 남아도 이런 가치 있는 프로젝트를 할 수 있구나.

이런 확신들이 모여서 지역에 정착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신안도에 살 때 어떤 점이 제일 힘들었어요? 반대로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왼쪽)지네 잡는 우리 대장부 꼬꼬! (오른쪽) 전기 킥보드를 친환경 이동수단으로 삼은 청년들

 

 

신안은 ‘말해 뭐해’ 싶은 오지 중의 오지예요. 저 포함 입주민들이 지네에 계속 물려서 눈이고 목이고 팅팅 부었고요,

택시가 없으니까 이동이 힘들어서 여름에 30분을, 그것도 그늘 하나 없는 섬마을 도로를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다닌 적이 있어요.

교통시설도 없고 편의시설도 없는 이 지역에서, 어쩌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기에 오히려 주섬주섬마을만의 재미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자꾸 지네에 물리니까 생각해낸 해결책이 닭을 키우는 거였어요. 지네의 천적이 닭이거든요. 닭인 줄 알고 들인 녀석이 알고 보니 오골계여서 힘이 깡패예요(웃음). 우리 꼬꼬 덕분에 8월 이후에는 단 한 명도 지네에 물리지 않았죠!

그리고 이동이 너무 힘드니까 전기 킥보드를 빌렸어요. 그리고 전기 킥보드를 쓸 수 있는 정류장을 만들었죠.

저희 마을에 오시면 친환경 전기 킥보드를 타고 이동해요. 섬마을의 바닷바람과 산내음이 더 잘 느껴져서 신안을 두 배로 즐길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기에 청년들은 청년들만의 방식으로 마을의 생활방식이자 신안에서 살아남는 가이드를 만들어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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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듣다 보니, 신안에 놀러 가고 싶네요! 저출산과 고령화는 지역소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하는데요.

청년들이 지방에서 살 수 있게 하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청년들이 수도권이 마냥 좋아서 이동하는 것만은 아닐 거 같아요.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수도권에 전부 몰려 있기 때문 아닐까요?

저 역시도 지역에 남아서 문화기획 일을 하고 싶었지만, 과연 수도권이 아닌 데서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처럼 지역에서 청년들도 살 수 있어, 원하는 걸 할 수 있어라고 보여주는, 주목받을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회가 더 많아진다면 청년들도 지방에서 다른 기회들을 찾아낼 거라고 생각해요.


주섬주섬 마을 플래이어들과 운영진이 모두 모여서 단체사진 

 


 

안좌도는? 목포에서 서쪽으로 20.8㎞ 떨어진, 신안 1,004개의 섬 중 하나이다. 신안 천사섬들 중에서도 가장 안쪽 외진 곳에 있지만, 독특한 구조와 볼거리로 최근 찾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는 희망의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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