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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칼럼

[10화] - 아빠 여러분, 올 겨울엔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보세요!

2022-12-15

"아빠, 나 잠이 안 와. 우리가 진짜 카타르에 가는 거야?"

 

 

 


몇 개월간 고대하던 카타르 월드컵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날 밤, 새벽에 출발해야 비행기 시간을 맞출 수 있어 조금 이른 시간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습니다. 그러나 쉽사리 잠 못 들고 연신 뒤척이던 아들이 이내 말을 건넵니다. "카타르는 인구의 88%가 외국인이래. 우리 거기 가면 전 세계 말을 다 들어볼 수 있겠지?", "도하에서는 술을 마시면 안 된대. 근데 아빠는 괜찮을 거야. 원래 술을 안 마시잖아." 아들은 그렇게 한참 동안 아빠에게 책에서 얻은 카타르와 도하에 대한 지식들을 전해주고 나서야 조금 지쳤는지 겨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싱글대디인 제가 어린 자녀와 단둘이 여행하는 것은 늘 돌발상황을 수반합니다. 아이가 네 살 때 일본의 한 놀이공원에서 아들이 꼭 먹고 싶다는 간식을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중 돌연 화장실이 급하다며 재촉하는 아들 때문에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주변의 많은 이들이 다녀와도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말해주셔서 그 상황을 잘 해결했었죠. 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태국의 한 사원에서 잠들어버린 아이를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택시를 찾는 저를 보고 선뜻 차에 태워준 이도 있었습니다.

부모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한 사람은 아이를 맡고 다른 한 사람이 상황에 대처하면 되겠지만, 혼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내는 것이 가끔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늘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이 있었던 기억들만 남은 걸 보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이처럼 여러가지로 힘든 일이지만 저는 틈만 나면 아이와 단둘이 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 이유는 여행을 계획하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겨울' 과목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나라, 다양한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지 배우고, 각자가 흥미 있는 나라에 대해 공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이들의 시야가 부모에서 가정으로, 사회로 확장되고 이제는 세계로 넓어집니다. 이 시기에 아이와 함께 여행을 계획하게 되면, 그 지역에 대해 조사하고 가고 싶은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이동 동선을 짜거나 언어까지 다양한 것들을 배우는 계기가 됩니다.

"아빠, 이거 알아? 전 세계에서 카타르가 유일하게 알파벳 Q로 시작하는 나라래."

"카타르는 다른 나라에 석유랑 천연가스를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는데, 우리나라는 석유가 안 나오나?"

저와 아이도 도하로 출국하기 전 역할을 나누어 이 지역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는데요. 읽기 쉽게 구성된 어린이 도서만으로도 한 나라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을 얻는 것은 충분했습니다. 아들은 어느 정도 나라에 대해 이해하게 된 후로는 주요 관광지 사진과 설명을 보며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구글 맵을 이용해 어떻게 이동할지 알아보더라고요. PC로 검색도 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 모습에 '이제 정말 많이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로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언어 공부였는데, 어차피 월드컵을 보러 가는 것이니 영어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한 저와 달리 아들은 카타르 사람들이 아랍어를 쓴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아랍어를 외워 제게 퀴즈를 내듯 건네곤 했어요. 몰랐던 표현들을 아이에게 배우는 기분은 참 묘했습니다. 함께 공부하면서 둘만의 관심사가 생겨 사이도 돈독해지고요!

두 번째 이유는 아이 스스로 긍정적인 변화를 꾀한다는 점입니다. 여행 전까지 그렇게 많은 아랍어를 공부해 잘 모르는 아빠를 놀리듯 써먹던 녀석이 도하 공항에 도착해 만난 사람들이 자신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를 전하자, 저의 뒤에 숨기 바빴습니다. 호텔이나 식당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에게도 번번이 인사와 대답을 피했죠. 그러던 중 사막투어에서 6인승 차량에 영국, 일본에서 온 삼촌들과 아빠가 이야기하는 게 재밌어 보였는지, 자신도 궁금한 게 있다며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하루 종일 사막에서 함께 하고 난 후 그들과 헤어질 즈음, 아이는 제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본어로 '감사합니다'가 뭐였지?" 하고 묻더니 영국인들에게는 "땡큐!", 일본인들에게는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를 외쳤습니다. 그 후로 아이는 여행에서 만난 이들에게 먼저 "앗살라무 알라이쿰(안녕하세요)!", "슈크란(감사합니다)!"과 같이 자신이 공부한 말들로 인사를 건네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아이와 온전히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는 자녀와 며칠씩 계속 붙어 있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 시기 아이와는 대화가 어려웠고,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하루에 길어야 네댓 시간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요. 이 마저도 식사, 숙제, 정리를 하다 보면 서로에게 집중하기는 어려운 시간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매일 24시간을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평소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대화 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상의하면서 내 아이의 성향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 또한 아빠의 여러가지 모습을 보며 '우리 아빠는 이런 사람이구나' 또는 '아빠는 이럴 때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할 수 있겠지요.

저도 이번 여행 중 아이와 걸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식사하면서, 그리고 잠들기 전에 누워서 정말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는데요. "나 딱지 진짜 잘 쳐. 아마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잘 칠 걸?"이라며 호언장담하더니 제대로 된 실력을 선보여 저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나는 아빠를 더 많이 도와주고 싶거든. 그런데 아빠는 내가 물을 엎질러도 아빠가 닦겠다고 하고, 포켓몬 카드 포장지들도 모두 아빠가 치우겠다고 하잖아? 나는 그런 것들은 내가 하고 싶어. 그래야 아빠도 덜 힘들지"처럼 감동적인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평소 일상이었다면 듣기 어려웠을 아이의 생각들을 알게 되어 정말 좋았죠.

 

 

 


처음 도하의 호텔에 도착했을 때, 저는 장난 삼아 아이에게 "이리 와서 앉아봐! 우리 오늘 어땠는지 이야기해보자"라고 말을 건넸는데요. 아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마닐라에서 비행기가 지연되었을 땐 카타르에 못 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고 카타르로 오는 비행기에서는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6시간이 지나 있어 신기했다고 대답하더군요. 그 후로는 매일 저녁 호텔에 돌아오면, "아빠, 오늘 하루 있었던 일 이야기해보자!"며 먼저 대화를 거는 거였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렇게 서로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당연하게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이유는 아이를 보며 부모도 성장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문화적 상대성을 존중하고 굉장히 열린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아이와 여행을 하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월드컵 기간 중에는 경기장뿐만 아니라 'FAN Festival'에서 매일 축제가 열리는데요, 직접 미니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잔뜩 기대하던 아들은 무슬림으로 보이는 이들과 한 팀을 이루어 경기를 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영어가 너무 유창해서 "와, 영어를 엄청 잘하시네"라고 말하는 저에게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저 형은 영국 사람이야. 영국에서 왔으니까 당연히 영어를 잘하지." 당연히 카타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민자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저는 저도 모르게 외모만으로 그 사람의 국적과 영어 실력까지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월드컵 기간 중 사람이 몰릴 것을 대비해 주요 시설마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동선을 통제하는 모습에 "우리 호텔이 바로 요 앞인데, 저 멀리 돌아가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라고 말하는 저에게 아이는 "그래도 경찰들이 사고 안 나게 하려고 저렇게 밤늦게까지 일하는 건데 잘 따라줘야지!"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여러모로 아이에게 많이 배웠어요.

자녀와 단둘이 하는 여행은 꼭 저희와 같은 한부모 가정에게만 허용된 것이 아닙니다. 아빠가 자녀를 데리고 여행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모처럼 아내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할 수도 있겠지요. 자녀가 여럿인 가정에서는 아이가 동기간 없이 홀로 아빠와 여행을 떠나 그동안 누나, 또는 동생으로서 역할을 하면서 무엇이 힘들었는지 털어놓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요. 올겨울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가르침과 영감을 주는 둘만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칼럼 <아빠가 전하는 엄마의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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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 싱글대디와 개구쟁이 아들의 좌충우돌 동반성장기 《아빠가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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