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이 된 후로 아들은 매주 2~3편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재미있는 경험을 한 날에는 일기도 쓰고 있고요. 책을 읽고 독서록도 씁니다. 독서록은 ‘책 제목 바꾸어보기’, ‘뒷이야기 상상해 써보기’,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와 같은 다양한 형식 중 하나를 선택해 쓰는데요, 단순히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적는 독후감보다 한층 더 재미있는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정해준 수십 가지의 주제들 중 하나를 선택해 글을 쓰는 '주제 글쓰기‘는 그 자체로 아이와 한참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줍니다. ’내가 초능력자가 된다면 어떤 능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해 보기‘,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소개하기‘ 등 재미있는 주제가 많습니다. 아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지요. 시간에 쫓기며 하루를 지내다 아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느덧 2학기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요즘, ’주제 글쓰기‘ 공책의 마지막 장을 쓰기 위해 아이와 주제 목록을 훑어보니 몇 안 남은 주제들 중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의 취미는 무엇이고,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써보기’
아들은 이내 고민에 빠졌습니다. “와, 나 이걸 다 쓰려면 한 장으론 부족하겠는데? 그림 그리기, 게임, 축구, 장기랑 체스, 포켓몬카드랑 스티커 모으기… 내가 아빠 도와주는 것도 취미지? 그럼 요리도 있고, 난 만들기도 좋아하는데. 아! 그리고 태권도랑 수영도 있잖아. 너무 많은데 이 중에 하나를 골라서 써야 하는 거야? 아니면 다 써?” 당장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많은 것을 보니 아들이 정말 ‘취미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쓰기 숙제를 빨리 마치고 아빠에게 장기 한판 두자며 벼르던 녀석이기에, 한 가지 취미만을 정해 글을 써야 했지만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는지 아들은 잠들기 전까지 취미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까 말했던 내 취미들은 거의 다 아빠랑 같이 하는 것들이네. 생각난 김에 내일은 오랜만에 계란말이 만들어 먹을까? 우리 같이 요리한 지 오래됐잖아!”
아이가 잠든 후 집을 정리하다 보니 저의 취미가 곧 아이의 취미, 아이의 취미가 곧 저의 취미가 된 지 오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종이에 함께 그리고 오려 역할놀이하던 병사와 무기들이, 거실 바닥에는 장기판이 놓여 있고, 아이 방에는 포켓몬 카드와 스티커를 모아둔 앨범이 꽂혀 있죠. 아빠가 되기 전엔 주로 총을 쏘고 적과 싸우는 데 사용하던 비디오 게임 콘솔에는 이제 두 캐릭터가 힘을 모아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활동에 저도 꽤 열중하며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더 이상 아빠가 아이에게 ‘놀아주는’ 개념이 아니라, 그야말로 같은 취미를 함께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죠. 사회에서는 서로 마음이 맞고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유전자를 나눠가진 아들과 아빠는 별다른 노력도 필요 없이 모든 면에서 취향이 비슷한 멋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요즘은 많은 콘텐츠가 대를 이어 유행하고 있죠. 포켓몬스터, 디즈니와 같은 콘텐츠는 아빠인 제가 어릴 때에도 이미 대세였던 것들이기에, 아이와 이에 대해 대화하고 함께 즐기는 데 진입장벽이 없습니다. 아버지들이 자녀가 즐기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던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죠.
이처럼 그리 어려울 것 없는 ‘자녀와 취미를 공유하는 삶’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뜻깊은 경험을 축적해 줍니다. 어떤 취미에 대해 부모가 자신의 노하우를 자녀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그 자체로도 교육이지만, ‘시간을 멋지게 보내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하죠. 자녀가 성장할수록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한 부모들에게는 함께 무언가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 큰 선물이고요. 자연스럽게 대화가 늘게 되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게 되니 그야말로 Win-win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평소 자녀와의 시간을 충분히 갖기 어려운 아빠들에게는 그 짧은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강력 추천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악기를 배워 연주회를 여는 것 같은 거창한 취미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함께 그림을 그리는 취미는 우리 가족만의 멋진 작품이나 그림책으로 남아 평생의 추억이 될 수 있고, 휴대전화만 하나씩 손에 들고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고 서로의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죠. 우주, 동물, 식물 등 한 가지 주제를 정해 함께 공부하고 지식을 나누는 유익한 취미도 의미 있겠네요!
영국의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여가를 잃는다면, 영혼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이 말은 곧 우리가 여가를 통해 영혼을 찾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자녀와 부모가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보며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즐거운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멋진 경험, 오늘 저녁부터 간단하게 함께하는 활동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칼럼 <아빠가 전하는 엄마의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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