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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지역 격차로 인한 잡노마드(Job-Nomad)의 삶, 이젠 거부합니다.

2021-10-05

조은주(경기도일자리재단 청년일자리본부장)

 

 

고조선부터 존재해왔던 전통적 신분제는 갑오개혁 당시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출신 지역과 학교를 따지는 ‘현대판 신분제’는 남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평소에는 출신지, 출신학교가 크게 불편함을 주지 않지만, 원가족과 교육제도에서 벗어나 직업의 세계인 노동시장으로 진입해야 하는 ‘이행기 청년의 시기’에는 전 생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출신지’가 주는 위력이 상당하다.

한 개인이 발 딛고 살아가는 곳이 어디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는 삶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서 여전히 ‘모로 가도 서울로’를 외치며, ‘서울 = 성공한 삶’의 등식이 유효하게 작동된다. 서울에 ‘좋은 일자리’, ‘편리한 교육·문화·복지 인프라’, ‘쾌적한 주거환경’ 등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서울·수도권에 부유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올해 2월에 국토연구원 국토정책 브리프에서 다뤄진 「지역 간 인구이동 특성과 정책적 시사점」에 따르면, 2017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인구유출이 전환되었으며, 15~34세의 경우,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순이동이 높게 나타났다. 연령별 이동 사유로는 15~24세는 ‘교육’이 높았으며, 25~34세는 25.3%에 해당하는 비율이 ‘직업’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디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 것인지?’ 한창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시기에 ‘어디서’는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이 없다. 이행기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잡노마드(Job-Nomad) 청년의 시기에 삶의 선택지는 전국 팔도가 아니라 ‘서울 공화국’으로 귀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만약 지역에 남기로 결정했거나, 혹은 다시 지역으로 돌아간 경우, 흔히 ‘실패자’ 프레임과 마주하거나 ‘무언가 부족해서 돌아왔겠지’ 하는 편견의 시선과 자주 부딪히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불편한 시선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삶과 경험을 추구하는 ‘다만추 세대’ 답게 ‘지역살이’가 하나의 트랜드처럼 자리잡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역살이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것을 넘어 지역에서 대안적 삶과 문화를 만들어나가며, 지역의 문제와 결핍 등을 해결해나가는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로 발돋움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일자리, 산업경제 중심에 둔 접근에서 탈피했다는 점이다. 패러다임을 바꿔, 청년들이 ‘삶의 다양성’, ‘지역의 포용성’에 중심을 둔 접근을 통해 지역자원과 연계한 새로운 생활양식 만들고, 지역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삶과 일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지역을 떠나는 청년’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에서 삶의 가능성조차 타진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와 편견’이 지역살이를 하고자 하는 청년에게는 더 큰 장벽으로 다가온다. 삶과 일의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서 청년들이 자기탐색의 기회를 갖고,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하는 일은 지역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대한일 것이다.

 

삶의 다양한 좌표가 지역과 청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도록 '삶을 심고, 가꿀 수 있는 지역'을 만들기 위한 전향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작년 수립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이와 같은 지역 격차 문제를 언급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세대연대와 지역상생 방안을 추진과제로 담은 바 있다. 또한, 「청년기본법」을 토대로 작년 연말에 발표한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에서 ‘원하는 삶을 사는 청년, 청년이 만들어가는 미래’를 비전으로 언급하며, △참여와 주도, △격차 해소, △지속가능성을 3대 원칙으로 천명한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다만, 중앙정부의 기본계획이기 때문에 지역 격차를 완화 시킬 구체적 해법을 담지는 못했다.

삶의 다양한 좌표가 지역과 청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도록 '삶을 심고, 가꿀 수 있는 지역'을 만들기 위한 전향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청년들이 다양한 사회적 실험을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영위해나갈 수 있도록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언급한 ‘지역사회활동계좌제’를 도입하거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문길 연구원이 2019년 11월 <정부 청년정책 새로운 좌표 설정 토론회>에서 제안한 ’청년을 위한 개인활동계좌제‘ 등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 사회 대전환을 이야기하며, 기본소득 이외에 참여소득에 대한 언급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청년들이 지역에서 구현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의 사회적 의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서 수당을 설계하여 지급하는 ‘청년활동수당’ 역시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로컬 크리에이터’를 지원하고, ‘지역정착고용 및 청년마을 사업’ 등을 보다 확대해나가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이 본인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되살리고, 확대해나갈 수 있도록 자치, 자립, 자생의 생태계를 만드는 일은 최근 유엔총회에 참석하여 연설한 방탄소년단이 언급한 것처럼 청년의 이름을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이 아닌, ‘웰컴 제너레이션(Welcome Generation)’으로 바꾸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

이제 더 이상 지역격차, 지방소멸을 언급하며, 청년팔이를 해서는 안 된다. 서울·수도권이 아니더라도, 지역을 Youthful City로 구현함에 있어, 지역의 Life, Play, Work을 청년들 스스로가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지역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보장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지역 격차로 인해 원하지 않는 비자발적 잡노마드(Job-Nomad) 삶을 멈추고,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말한 진정한 의미의 노마드(Nomad)로 새로운 자아를 찾아나섬이 가능해질 것이다. 정착의 문제는 그 이후에 개인이 삶을 꾸려나가며 선택해야 할 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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