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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저출산이 위험이라고요?”

2018-04-23

이원재(LAB2050 대표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주어인 ‘저출산 정책’

 

“저출산이 위험이라고요? 제게는 출산이 위험인데요?”

국가가 ‘저출산 때문에 사회가 위험하니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하자’고 하면, 아마도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질문이 떠오를 법하다.

당연한 반응이다. 애초 출산은 개인의 위험을 높인다. 부양부담이 커지고 삶의 불확실성이 커진다. 그런데 국가는 계속 저출산이 위험이라고 한다. 물론 국가에게는 위험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국가 사정이다. 주어를 국가로 한 이야기를 개인에게 계속 건네 봐야 공감을 얻지 못한다.

국가주의적 시각과 거기서 나온 인구정책 및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저출산을 심화시키고 고령사회를 앞당겼다.

2005년이었다. 합계출산율이 1.08명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놀란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한다. 그게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다.

 

그 뒤 12년 동안, 수많은 정책을 쏟아냈다. 저출산 대책에 약 120조원, 고령사회 대책에 약 100조원을 썼다는 게 공식 집계다. 하지만 2017년 합계출산율은 1.05명이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키웠다. 저출산 경향은 너무 오래 지속되어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됐다. 1990년대 초 이미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고령화가 진행 중이었음에도 산아제한 정책은 이어졌다. 2005년 이후 12년 동안의 정책도 실패로 돌아갔다.

우선 잘못된 방향을 설정한 뒤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걸고 국가 자원을 투입한 실책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저출산 대책에는 맞벌이 가정의 출산 및 보육지원이 정책의 중심에 있었다. 노동투입 증대를 통해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명확하다. 의도도 틀렸지만 실효성도 거의 없게 됐다.

2016~2020년 5년간 지속되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됐다. 노동투입 증대에 집착한 나머지 ‘부양비’라는 핵심지표를 놓치고 말았다. 부양비는 16~65세의 생산가능인구 1명이 유소년 또는 노인 몇 명을 부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제3차 기본계획은 합계출산율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출산율 목표가 달성될 경우, 향후 30년 동안 부양비는 오히려 악화된다. 노인이 늘어나는데 유소년도 동시에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른바 ‘더블케어’ 상황이다.

정책목표에서 제시한 출산율이 달성됐을 때 15년 뒤인 2033년 부양비는 0.59인데, 그보다 낮은 출산율 저위가정(통계청 장래인구추계)은 0.65로 오히려 높다.(그래프 1) 정책이 성공하더라도 2048년이 되어서야 부담 완화가 시작된다. 현재 합계출산율은 저위가정 수치보다도 낮다.

 

 

- 고위가정: 2016년 1.20명에서 2050년 1.64명까지 증가 후 유지

- 저위가정: 2016년 1.16명에서 2050년 1.12명으로 감소 후 유지

- 출산율 정책목표 시나리오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상의 2017~2020년 출산율 목표가 실현될 때를 가정한 추계임. 2021년 이후엔 2020년 목표 출산율(1.5명) 유지

- 생산가능인구 15~64세 기준

 

 

현재의 청년층은 30년 동안 부양부담을 이중으로 지게 된다. 노동투입 중심 성장에 매달리다 보니, 현재 청년 세대의 고통을 늘리는 방향의 정책목표를 세운 셈이다. 정부가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늘리는 계획을 세우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인구정책과 관련해 지금 시점에서 받아들여야 할 진실은 단 한 가지다. 저출산 추세를 되돌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률을 높이겠다는 생각은, 틀렸다. 이미 불가능해졌다.

 

역동적 고령사회의 비전을 만들자

이제 고령사회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좀 더 나아가 고령화가 축복이 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축소되어가는 사회라고 해서 반드시 불행해진다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 성장률이 낮아지고 고령자 비중이 높아지겠지만, 그렇다고 역동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미리 절망할 필요는 없다. 기술의 변화를 활용하고 문화와 사회구조 변화를 끌어가면서 고령화를 축복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면, 몇 가지 중요한 실천을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은 고령사회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출산율을 높여 인구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생각만 갖고 있다가, 한 번에 사회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런 위험을 공동체 전체가 다 같이 안고 갈 수는 없다.

현실을 인정하면 ‘역동적 고령사회’의 비전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출산율 제고 목표는 일단 폐기해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지 않으면 공동체가 소멸한다는 식의 인식을 정책에서 지워야 한다. 대신 고령화가 진행된 상태에서도 사회 역동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걸 전제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당장 변화시킬 수 있다.

 

- 고위가정: 2016년 1.20명에서 2050년 1.64명까지 증가 후 유지

- 저위가정: 2016년 1.16명에서 2050년 1.12명으로 감소 후 유지

- 출산율 정책목표 시나리오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상의 2017~2020년 출산율 목표가 실현될 때를 가정한 추계임. 2021년 이후엔 2020년 목표 출산율(1.5명) 유지

- 생산가능인구 20~69세 기준

 

첫 번째로 생산가능인구 범위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 15~64세로 되어 있는 생산가능인구 정의를 현실에 맞게 20~69세, 25~74세로 단계적으로 변경해야 한다. 사실 생산가능인구 연령만 변화시켜도 저출산으로 인한 부양비 상승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된다.(그래프 2) 결국 노인이 되어서도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문제는 금세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이미 환경은 마련되어 있다. 건강상태는 점점 좋아져 70대까지도 일할 수 있는 노인이 많다. 해가 지날수록 학력도 높아진다. 60세 이상 인구가 실제 생산인구로 활동하도록 고용정책도 재설계해야 한다. 돌봄, 사회적경제, 마을공동체, 비영리 등 다양한 서비스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 임금, 노동시간, 4대보험 등이 고령자들에게는 유연하게 적용되도록 재설계해야 이런 일자리가 고령자들에게 쉽게 확산된다.

기초연금 강화도 필수적이다. 고령자가 일부는 연금으로, 일부는 일에 대한 보상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기초연금 강화는 부수적으로 고령자들의 부동산 처분을 이끌어, 부동산시장 안정 및 세대간 자산 분배에도 기여하게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과학기술 정책 및 4차 산업혁명 정책과 고령사회 대응을 연계해야 한다. 국가 R&D를 사회문제 해결형으로 개편하는 것이 옳다. 현재는 국가 R&D 예산 20조원 가운데 산업지원형 예산이 절반 이상이다. 이를 국가의 미션을 해결하는 연구 쪽으로 돌려야 한다. 이때 고령사회 대응기술 개발을 국가 미션으로 제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빠른 고령화 상황에서, 이를 앞서는 국가의 미션은 없다.

미국 DARPA가 군사기술 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첨단기술을 발굴해 실리콘밸리와 공유했듯이, 국가 R&D 중 산업지원형 연구개발 과제를 국가에 필요한 과제로 수행할 수 있다. 교통, 의료, 돌봄, 주거 등의 사회 인프라 구조가 고령자가 활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도록 기술개발역량을 집중 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를 고령사회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령규범을 변화시켜 세대교체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 고령사회에서 사회 역동성을 잃지 않으려면 젊은 세대가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규범을 재편해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을 젊은 세대가 주도할 수 있도록 연령서열화 규범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젊은 리더와 나이든 팔로어가 같이 일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역동성이 유지된다.

정부가 앞장서서 위원회와 공공기관 이사회에 세대 거버넌스(성별 쿼터와 마찬가지로 연령별 쿼터를 적용)를 도입하고, 주요 기관장에 40대 이하를 임명해 사회 분위기 변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다. 기술도 기업 구조도 고용도 인구 구성도 모두 근본적 변화가 진행중이다. 과거 패러다임으로 정책을 짜면 반드시 실패한다. 국가의 시각이 아니라 개인의 시각에서 정책을 짜야 하고, 기술변화를 염두에 두고 활용하며 계획을 세워야 하며, 인구구조가 변화해도 역동성이 유지되도록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를 늘리겠다는 과거 방식을 버리더라도, 행복하고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어갈 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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