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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좋은 돌봄'을 위한 세 가지 원칙

2021-05-20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코로나19로 새로운 삶의 ‘표준’이 된 거리두기와 비대면 관계의 일상화로 돌봄관계에 있는 주변화된 시민의 다차원적 위기가 가시화되었다. 어린이 집, 유치원, 학교, 요양시설, 장애인 시설 등 공적 돌봄 서비스 기능이 약화되자 돌봄의 부담은 가족으로 전가되었다. 누군가의 돌봄 없이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운 가족원을 둔 취업 여성은 일과 돌봄 사이에서 힘겹게 줄타기를 하며 버티거나 직장을 포기해야 했다. 대부분이 여성인, 공적 영역에서 누군가에게 돌봄을 제공하던 노동자들은 감염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거나, 실직하거나 생계가 불안정해졌다. 생계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 없고 자녀를 돌볼 수 있는 다른 자원이 없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홀로 방치된 채 위험한 환경에 내몰리고, 공적 서비스의 지원 없이 장애 자녀를 돌보는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어머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도 반복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배경으로 도입된 사회서비스 정책은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출발했다. 빠른 시간 내에 일자리와 ‘산업’의 규모를 양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민간영리사업자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이용자의 선택권’ 보장을 명분으로 한 시장 경쟁 원리가 도입되었다. 돌봄 서비스는 이윤 창출을 위한 사업 수단이 되었고, 돌봄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되었다. 매년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돌봄 노동은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고착화되고,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에 대한 학대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돌봄의 질적 수준 제고가 오랫동안 당면한 정책 과제로 인식되어 왔으나, 획기적인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코로나 19가 드러낸 돌봄의 위기는 공공선으로서 ‘좋은 돌봄’을 위한 국가의 공적 대응을 긴박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좋은 돌봄’은 돌봄을 제공하는 시민의 희생과 헌신이라는 도덕적 자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돌봄을 ‘주고 받는’ 시민 상호간의 신뢰와 배려, 존중, 감정적 유대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이는 개개인의 ‘선한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국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어떤 욕구가 공적 대응을 필요로 하는 욕구인지, 인정된 욕구에 대해 어떠한 자원을 어느 정도 동원할 것인지, 누가 어떤 조건에서 돌봄을 제공할 것인지 등 돌봄의 욕구를 조직화하는 문제는 돌봄 관계에 있는 시민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며, 그 자체가 사회정의의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

 


코로나 위기는 좋은 돌봄을 위한 공적 대응을 긴밀한 과제로 제시했다. 개인의 선한 의지가 아니라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클립아트코리아

‘좋은 돌봄’을 위해서는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시민에 대한 보편적 지원이다​.

예외적 상황이거나 일부 시민의 특수한 욕구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돌봄의 욕구는 모든 인간 존재의 시작이자 끝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성인기에 이를 때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신체적·정신적·물질적 측면에서 타인으로부터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절대적 의존의 시기를 거친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돌봄의 욕구를 경험한다. 질병과 장애 등 생애과정의 다양한 국면 속에서 일시적이거나 영구적인 돌봄 욕구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처럼 돌봄이 전 생애과정에서 모든 시민이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욕구라는 사실은 영유아-아동-장애-질병-노령 등 생애과정 전반의 돌봄 욕구에 대한 통합적 지원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칙은 노동력 재생산, 일자리 창출 등 경제성장으로 귀결되는 다른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돌봄 정책을 위치지우지 않으므로, 아동이나 노인 뿐 아니라 장애인, 환자, 무연고 사회복지시설 생활자 등 사각지대에 시민의 욕구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한다.

두 번째 원칙은 돌봄 노동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인정이다.

돌봄은 노동자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화폐가치로 성과가 측정되는 ‘전형적인’ 노동과 차별화된 속성을 가진 노동이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인의 욕구 충족이 우선시되는 타자지향적 노동이며, 타인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정서적 교감을 필요로 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자의 경제적,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존중은 자신의 복리와 이익에 앞서 타인의 욕구에 우선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건이 된다. 아동이나 노인 학대 예방을 위한 CCTV 감시와 처벌, 표준화된 시설 평가 체계가 ‘좋은 돌봄’을 위한 근본적 대안이 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특히 학대 예방을 위한 감시 장치들은 오히려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시민의 사회권을 대립항으로 위치지움으로써 신뢰와 배려, 상호존중의 가치에 기반한 실천으로서 돌봄 관계를 방해한다. 돌봄 노동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인정은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 뿐 아니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시민의 사회권 보장의 전제라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원칙은 돌봄에 대한 과감한 재정투자다​.

돌봄에 대한 확장적 재정투자는 ‘재원 부족’ 또는 ‘긴축재정’을 이유로 꺼려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오랫동안 돌봄이 가족 내에서 무급으로 수행되거나 노동시장에서 평가절하된 방식으로 제공되어 왔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시적 착시 현상이다. 어떤 서비스라도 ‘공짜’ 또는 ‘저렴’하게 제공되다가 ‘유료’로 전환될 때는 부담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 보상과 인정 없이 희생과 헌신에 의존해 온 돌봄 시스템은 정의롭지 못할 뿐 아니라 다수의 여성에 대한 ‘무임승차’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돌봄 욕구가 모든 시민의 보편적 욕구이므로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개인의 생존도, 사회의 지속가능한 재생산도 낙관하기 어렵다. 돌봄 노동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인정이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시민의 존엄한 삶을 위한 전제라고 할 때 이를 위한 재정적 지출은 필수적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조안 트론토(Joan Tronto)의 다음과 같은 말은 경제적 비용과 돌봄에 대한 발상 전환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경제적 삶의 목적은 돌봄을 주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지원하는 것이다. 생산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우리 삶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돌봄 욕구는 모든 시민의 과거이자 동료 시민의 현재이며, 모든 시민의 예정된 미래다. 돌봄을 위한 재정 지출의 규모는 누군가의 돌봄 없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삶의 가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좋은 돌봄’을 위한 정책으로 구현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개혁은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간의 정치적 협상과 타협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돌봄의 공공성 강화와 돌봄 노동자 처우 개선을 목표로 한 사회서비스원의 설립, 장애인의 인권보장을 위한 탈시설화와 지역사회통합돌봄, 사회서비스 분야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 등 사회서비스 정책의 방향 전환을 위한 몇몇 시도들은 그동안 추진되어 온 정책의 경로의존성과 이해관계자 요구의 다양성으로 인해 갈등적 양상을 띄고 있다. 돌봄 개혁을 위한 갈등과 대립의 국면에서 공공선으로서 ‘좋은 돌봄’을 위한 정책적 전환을 위해 중요한 것은 그동안 돌봄 관계에서 구조적으로 주변화되었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돌봄 관계에 있는 시민의 참여가 배제된 돌봄 정책은 돌봄을 주고받는 시민들간의 지배와 학대, 불평등한 돌봄의 악순환을 재생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시민,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시민 등 돌봄의 사회적 조직화 방식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시민들이 돌봄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체계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좋은 돌봄’이 하나의 개념과 이상이 아닌 돌봄 책임과 자원의 분배를 둘러싼 민주정치적 실천의 과정이기도 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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