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아이콘

위원회 칼럼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을 위한 기본법」의 제정을 위하여

2021-06-03

신옥주(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2002년부터 정부에서 저출산 대응정책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되었다. 또한, 같은 해 9월에는 저출산과 인구고령화에 대비한 인구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대통령직속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족되면서 국가의 인구정책이 산아제한정책에서 출산율을 제고하고, 저출산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의 연장선에서 모자보건법, 건강가정기본법,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등 관련 법제를 정비하고, 임신, 출산 및 보육지원 등 재생산 건강을 지원하는 사업에 재정을 지속적으로 투입‧확대해 왔다.

현재 실행중인 다양한 임신과 출산지원사업은 산모와 영유아의 건강과 복지를 지원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나 “출산율 제고”를 목표로 하는 정책의 틀 내에서 이루어져 산모와 영유아의 인권과 복리의 충분한 보장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출산지원을 위한 법‧정책을 살펴보면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율적 권리 보장 보다 인구 감소 또는 증대를 위한 정책 중심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출산율이 높았던 과거에는 여성의 출산능력이 국가의 발전과 성장의 저해요인이라고 보고 국가가 출산억제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여성의 몸을 통제하였다면, 현재의 저출산 시기에는 출산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관점에서 출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출산에 대한 의무를 강조해 온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출산은 여성의 재생산권에 관한 문제이다.

1994년 카이로에서 개최된 유엔 국제인구개발회의(ICPD)에서도 “인구・개발정책이 인구 수 조절, 국가발전 등 특정한 인구학적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개인의 욕구, 열망, 권리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재생산 권리를 포함해 인권, 성평등, 여성권한 강화, 삶의 질 향상이 정책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국가의 인구정책에서 여성과 출산에 대한 기본 인식의 변화는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관점의 변화는 여성은 물론 모두의 재생산권 보장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재생산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의 성과 재생산 건강 보호와 권리 보장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의 생애주기에서 비혼, 만혼 증가 등 청년의 생애기획 변화는 임신, 출산 지원뿐만 아니라 피임과 인공임신중단에 대한 수요로 확대되고 있고, 직장에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휴가제도 등 일‧생활 양립과 안전한 근로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또한, 이른 초경과 성경험 등 신체적 성숙이 빨라지고, 젠더 폭력 등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아동‧청소년기부터 상호 존중과 평등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의 실시와 건강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완경기 이후 호르몬 치료와 자궁탈출증 등 질환은 장노년기 개인의 삶의 질에 밀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는 모든 개인의 기본적인 건강권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고, 유년기에서부터 노년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통합적인 법과 제도를 통해 보장될 필요가 있다.

또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헌법상 개인에게 보장해야할 기본권으로서 자기결정권, 평등권, 알권리, 건강권, 국가의 모성보호의무 규정 등에 따라 각 개별 법률에서도 이러한 헌법상 가치와 방향에 따라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단일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건강가정기본법,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모자보건법, 근로기준법 등 개별 법률에서 여성과 모의 재생산 건강보호 및 재생산권의 보장을 위한 다양한 규정들을 두고 있지만 일관된 원칙이 없고, 특정대상과 시기에 집중되는 등 차별적 규정이 산재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비롯한 모두의 성‧재생산권과 이를 위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이라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를 기반으로 하여 관련 법령을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정비 하는 한편, 관계법령을 포괄하는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을 위한 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여성을 비롯한 모두의 성‧재생산권과 이를 위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이라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를 기반으로 하여 관련 법령을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출처:클립아트코리아)

 


단일법으로 성・재생산건강과 권리보장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방안은 무엇보다도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관점을 견지하면서 법의 목적과 권리의 내용을 구성하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이미 다양한 영역의 개별 법률들 속에 산재하고 있는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호 내용을 하나의 법률로 통합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기본법형식의 법률 제정이 좀 더 현실적이다. 성·재생산건강과 권리 보장 기본법(가칭)은 기본권의 직접적인 보장의 측면을 구체적으로 담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반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하여 통일적인 정책의 실현이 용이하고,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보장을 위한 정책의 수립과 실시에 있어 원칙과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 기본법(가칭)의 목적은 ‘모든 개인에게 인권으로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관련 모든 생활 영역에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제도와 여건을 마련하는 것에 있다. 또한, 기본법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모든 개인이 성별, 나이, 장애, 혼인 상태, 직업, 종교,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에 있어 차별을 금지하고, 실질적으로 보장할 개인의 세 가지 권리로서 자기결정권, 정보접근권, 서비스접근권 차원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을 위한 정책의 내용으로 교육기관과 일터에서의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 포괄적 성교육, 상담과 정보제공, 의료인 역량 강화 및 의무, 월경, 피임, 임신(보조생식기술 포함), 임신중단, 출산,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장, 대국민 인식개선작업 등 모두의 포괄적인 건강권 차원에서의 보장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사회는 모든 개인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며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 기본법(가칭)」제정에 힘을 모아야할 것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가 함께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책 방안을 모색해 나아갈 때 보다 질 높은 건강한 삶과 밝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맨위로 올라가기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