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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저출생의 해법은 성평등 노동

2020-10-28

배진경(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구피라는 열대어를 키웠었다. 구피는 알이 아니라 새끼를 매우 자주 낳는다. 한 달에 한 번씩 새끼를 낳아 저러다 어항이 터지는 것 아닐까 걱정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면 어항 속 모든 구피들은 일제히 새끼낳기를 멈추었다. 시간이 지나고 개체 수가 줄어들 무렵 구피는 다시 새끼를 낳기 시작했다. 구피를 키웠던 몇 년간 구피는 낳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어항 속 개체 수를 적정 수준으로 맞추었다. 자신도 살고, 새끼도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나간 것이다. 세계 최저의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은 아마도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는 어항이라는 집단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1.08이라는 역사상 최저의 합계출산률을 확인한 2005년 이래 정부는 많은 정책과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출생률은 점점 낮아만 지고 있다. 그동안 정책의 초점이 잘 못 되었던 것이다. 정점은 2016년 당시 행정자치부가 만들었던 가임기 여성지도였다. 가임기 여성이 그 지역에 얼마나 살고 있는지를 핑크색으로 표시한 지도였다. 여성들은 국가가 여성을 출산도구로만 사고한다고 크게 분노했다. 저출생의 문제는 명확했다. 여성을 시민으로서 평등하고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출산의 도구로 이용하는 구조에 있다. 한국은 아이와 여성의 삶이 조화를 이룰 수 없고 아이에게 여성의 삶이 잠식당하는 곳이다. 심지어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이라도 말이다.

결혼한 이들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비혼을 선택한다면 더더욱 내 밥벌이는 스스로 해야만 한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OECD 1위의 성별임금격차를 기록하는 나라다. 여성의 노동은 저평가 받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중소영세사업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을 받으며 노동하고 있다. 그 시작은 성차별적 채용이다. 2017년부터 한국가스안전공사‧대한석탄공사‧서울메트로 등 공공기관, 하나은행‧국민은행‧신한은행 등 은행권에서 속속 채용 성차별이 드러났다. 채용 성차별이 의심되어 조사한 것이 아니라 다른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드러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채용성차별이 실제로 존재하며 여성들이 남성보다 적게 채용되는 이유가 바로 성차별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7년부터 한국가스안전공사‧대한석탄공사‧서울메트로 등 공공기관, 하나은행‧국민은행‧신한은행 등 은행권에서 속속 채용 성차별이 드러났다.  

(이미지 출처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678128)

공공기관과 은행은 좋은 일자리로 분류된다. 고임금과 안정적 일자리가 보장되는 1차 노동시장이다. 면접점수 조작으로 1차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여성들은 자신이 가진 자격보다 더 낮은 일자리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여성의 노동생애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루틴이다. 공정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을 것이라 믿었던 기업에서는 조작이 숨어있었다. 면접 자리에서 드러나는 성차별은 더욱 직접적이다. 남성에게 묻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결혼, 남자친구, 출산’에 대한 현재와 미래를 묻는다. 이는 ‘결.남.출’이라는 축약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많은 여성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여성들은 계획있다고 해도 탈락하고 없다고 해도 탈락한다. 면접 자리에서 결.남.출을 묻는 행위는 실상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한 중소기업 대표는 면접에서 이런 질문 없이 어떻게 직원을 뽑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성차별이라는 사실을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차별적 현실에서 법은 현실과 매우 멀리 떨어져 존재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여성이 돌봄자가 될 것이라는 ‘가정’만으로 이뤄지는 차별이다. 여성에게 당연한 것처럼 부과되는 돌봄은 노동으로 인정 되지 않은 채 여성의 자연스러운 역할인 양 이해되고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무급돌봄노동은 여성의 현재와 미래를 앗아간다.

 성차별적 현실에서 법은 현실과 매우 멀리 떨어져 존재한다.  면접에서도 직장 내에서도, 왜 여성은  차별받아야 하는 걸까?

어렵게 회사에 취직하면 각각의 노동시장별로 다른 방식의 차별이 상존한다. 사람이 많아 승진체계가 존재하고 업무분장이 잘 되어 있는 규모가 있는 기업들에서는 여성들에게 주요업무를 배정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지만 한번 실수라도 할라치면 ‘여자들은...’ 이라는 집단화된 비난이 쏟아진다.

반면에 어려운 일을 잘 해내면 ‘독한 여자’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실수한 남성들에게 ‘남자들은...’이라거나 일을 잘 해낸 남성에게 ‘독한 남자’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2차 노동시장은 더 직접적인 차별이 횡행한다. ‘남자가 가장인데’라며 남성들에게 임금과 승진을 몰아주는 것을 당연시한다. 홀로 부모님을 부양하는 여성에게 결혼을 앞둔 남성이 가장이 되니 승진을 먼저 시켜주겠다고 말한다. 최저임금이 인상되었다는 이유로 한 마트에서는 여성노동자들에게만 시간을 줄일 것을 요구했다. 남성들은 가장이므로 수입이 줄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노동시간을 유지하였다. 생계에 성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노동은 늘 자아실현으로 포장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온전히 여성에게 맡겨진 독박육아는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지속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일‧생활 균형이란 말은 여성들이 일과 무급돌봄노동을 병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자는 말일 뿐 남성들은 여기에 관여되지 않는다. 인간이 독립적 존재라는 것은 허상이며 폭력이다. 누구나 각각의 연령대와 서로 다른 상황에 맞는 돌봄이 필요하다.

스스로 가능할 때도 있지만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누구나 기본적으로 나와 타인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누군가의 돌봄을 온전하게 받으면서 회사일에 충성할 20세기형 노동자 모델이 기준이다. 여성은 노동시장에 진출했지만 남성은 가정 내 돌봄노동으로 진출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일생활균형이란 여성의 이중노동을 지칭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쯤되면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결과로 도출된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운동으로 번졌던 ‘비비탄’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비(非)혼, 비(非)출산 탄탄대로라는 뜻이다. 물론 비혼과 비출산을 한다고 해도 여성으로서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피로하지만 적어도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무거운 짐은 피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비비탄은 2018년 웹하드 카르텔이 드러나자 비(非)연애, 비(非)섹스가 포함된 ‘4B운동’으로 이어졌다. 결혼과 출산은 물론 연애와 섹스마저도 모두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대 청년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꼭 결혼하겠다는 응답을 한 여성은 11%에 불과했다. 여성들이 꼽은 1순위 이유는 ‘양성 불평등 문화가 싫어서’였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이유로는 ‘이 사회가 아이를 키우기에 좋지 않아서’가 36.4%로 1위를 차지했다. 4B운동은 이러한 생각을 좀더 적극적으로 선택하려는 것 뿐이다.

 

성평등한 사회 실현이 필요하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원하는 일을 차별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여성의 노동과 출산선택의 경로를 살펴보면 저출생을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노력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가닥이 잡힌다. 저출생은 아이를 낳게 한다는 목표로 접근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이 원하는 일을 차별없이 할 수 있고, 평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자연스레 해결된다. 여성들이 원하는 노동을 하고 인정받을 때, 안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 때, 무급돌봄노동이 평등하게 분담될 때 바로 그때이다. 저출생이라는 현상은 바로 노동이 존중되는 성평등 사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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