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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칼럼

<다시 태어나도 아빠가 되겠습니다>2화 너를 위한 첫 번째 선물

2024-03-27

글_임지성

 

따스했던 조리원 생활은 빠르게 지나갔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달콤함도 사라져 가고 있었다. 삼시세끼 챙겨주는 밥만 먹으면 되는 환경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아이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오롯이 우리 부부가 한 생명을 가꾸어 나가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불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새로운 의식주를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 씻겨서 재워야 한다. 집안에 또 다른 집을 마련하는 셈이다. 식구 하나 늘었을 뿐인데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준비해야 할 것은 많다. 모자라면 안 된다. 넘치는 게 낫다. 이 정도면 됐나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했다.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은 의(衣)다.

임신·출산 선물로 받은 옷들이 많이 있다. 배냇저고리, 내복, 우주복 같은 옷들인데, 깨끗하게 빨아 햇볕에 말린다. 건조기를 돌려 먼지를 털어내는 과정은 필수다. 크기별로 정리해 바로 입힐 옷과 나중에 입힐 옷을 구분하여 정리한다. 기저귀는 조심스럽다. 아이 피부 특성이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종류별로 몇 개 고른다. 써보면서 아이에게 맞는 것을 찾아 나가야 한다. 임신·출산 행사장에서 받은 기저귀도 소중히 정리해 놓는다. 아이 건강을 위해 면으로 된 기저귀를 써볼까 생각했다. 똥오줌 기저귀를 매번 손빨래해야 한단다. 소독도 해야 한단다. 포기했다.

아내 지인들이 입혔던 옷을 가져가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거의 새것이라고 했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그러는 거지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흔쾌히 받았다. 여기저기서 받은 옷상자가 8개가 넘었다. 정말 새것들이다. 하나같이 비싸고 품질 좋은 옷들이다. 흠집 하나 없다. 물질보다 사랑을 듬뿍 주기로 약속한 우리 부부다. 새 옷이든 헌 옷이든 선물 받은 옷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옷 걱정을 하지 않았다. 옷값만 수십만 원 아꼈다.

그 다음 준비한 것은 식(食)이다.

아내는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아 바로 모유를 먹였다.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했다. 모유를 비축할 수 있는 유축기와 냉동실에 보관할 용기가 필요했다. 젖병과 소독기는 필수고 ‘쪽쪽이’라 불리는 공갈 젖꼭지도 준비했다. 매번 뜨거운 물을 끓일 수 없기에 열탕기도 준비했다. 여분의 분유와 턱받이도 준비했다. 가재 수건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 젖을 물리고 트림을 시켰을 때 자연스레 흐를 수 있어 받쳐줘야 한다. 이유식도 몇 개 사놓았다. 이유식 포장지에 웃는 아이 모습이 익숙하다. 나도 저걸 먹고 자랐다고 했다.

마지막 준비는 주(住)다.

씻고 자고 노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주변에서 받은 아이 침대와 기저귀 갈이대를 거실에 놓는다. 이동식 선반에 기저귀와 젖병, 손수건과 물티슈를 준비했다. 폭신한 침구를 대신할 아기 이불과 가습기도 살핀다. 가열식이 좋지만 위험하다. 대안으로 고른 것은 자연기화식 가습기다. 매번 청소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가장 건강한 제품이라고 판단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온도계와 놀이기구(오리 뾱뾱이 같은) 몇 개도 준비하니 꽤나 그럴듯하다. 욕실용품은 신중히 골랐다. 보들보들한 피부에 걸맞게 좋은 제품으로 준비했다. 비누, 샴푸, 바디워시, 크림, 로션, 손톱깎이, 가위 등 준비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온 집안을 차지하고 있는 새로운 의식주가 눈앞에 펼쳐졌다.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준비했기 때문에 뿌듯하고 행복했다. “행복을 찾기 위해 그리 멀리까지 갈 필요가 무엇인가. 행복은 바로 내 눈앞에 있는데!” <파르마의 수도원>에서 스탕달이 말한 것처럼 행복은 그렇게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한 달 안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출생증명서와 부모확인서 등을 제출하면 된다. 이때 아이 이름은 필수다. 한자도 들어가야 한다. 어떤 이름이 좋을지 미리 생각은 했지만 정하지는 못했다. 이제부터 고민 시작이다. 본격적으로 알아봐야 했다.

이름 짓는 것도 트렌드가 있다. 받침이 없어야 부르기 편하다, 영어로 썼을 때 막힘이 없어야 한다, 아이돌이나 연예인 이름과 비슷해야 좋다, 남녀 구분이 없는 이름이 좋다, 한자 뜻이 좋아야 한다 등 작명 기준이 참 많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쁘다는 건 피하고 싶었다. 찜찜한 건 싫었다. 두고두고 후회하는 건 더 싫었다.

장모님 소개로 작명소에 갔다. 아이 생년월일시를 드리니 이름을 몇 개 주셨다. 뜻풀이도 함께 받았는데 타고난 사주에 모자란 것을 보충하는 한자를 넣었다고 했다. 맘에 들지 않았다. 우리 문중에는 항렬에 따라 돌림자를 쓴다. 돌림자를 넣어 이름을 지어보았다. 역시 조금 부족했다. 연예인과 유명인, 최근 많이 짓는 남자아이 이름을 찾아서 적어보았다. 하나씩 우리 아이와 대입해보았다. 뭔가 아쉬웠다. 영어로 써서 외국인이 발음하기에 편한 이름들도 써보았다. 받침이 없는 이름들이 대부분이었다. 순수한 한글 이름도 적어보았지만 뭔가 부족하고 아쉬웠다. 고민이 깊어진다.

내 이름은 시골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직접 지으셨다고 했다. 가운데 돌림자를 쓴 한자 이름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한자를 알려주며 뜻을 설명해주시곤 했다. 좋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하셨다. 특이한 건 한자는 쉬운데 한글로 읽으면 발음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학창 시절 내내 나와 같은 이름은 본 적이 없다. 이런 내 이름이 싫었다. 너무 튀었다. 놀림도 당했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달리 아버지는 내 이름을 무척 좋아하셨다.

고민 끝에 아들 이름을 지었다. 작명 공부를 해서 한자 획수와 음양오행, 발음 등을 따져보았다. 돌림자도 적용했다. 어플을 통해 확인 검증했다. 몇 가지 후보 중 다수결로 이름을 골랐다. 마음에 들었다. 태명 대신 이름을 부르니 되돌아본다. 활짝 핀 꽃처럼 환하게 웃는다.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집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너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아이가 크면 이름에 대해 자세히 알려줄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뜻은 무엇인지도 설명해줄 것이다. 내 이름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을 것이다. 본 적 없는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말해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이름은 소중하다. 이름을 지어주는 것보다 더한 선물은 없다. 이름은 나고, 내가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선물하셨던 것처럼 나는 아들에게 이름을 선물했다. 아버지는 손자 이름이 마음에 드실까? 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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