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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칼럼

성평등,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길

2021-08-23

강남식(해양경찰청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7월 13일 2009~2019년 ‘한국노동패널’를 바탕으로 결혼 연차에 따른 고용률(25~64세) 변화를 분석해 발간했다. 발간 보고서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변화 분석과 시사점’에 따르면 기혼 여성 고용률은 결혼과 함께 급락해 결혼 당시 고용률(68.1%)을 회복하기까지 21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기혼여성이 결혼 이후 취업을 유지하기 가장 어려운 요인은 출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녀 모두 결혼과 자녀 출산은 고용률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놀라운 것은 아직도 큰 격차로 성별에 따라 정반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결혼으로 인한 고용률 영향을 보면 여성은 미혼보다 기혼이 14% 낮았고, 반대로 남성은 22.6%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자녀에 따른 취업 확률을 보면, 미취업 남성은 자녀가 1명 있으면 24.2% 증가하나, 오히려 미취업 여성은 자녀가 1명 있으면 7.2%, 2명 있으면 17.6%로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직장에 다니는 여성은 다른 요인이 일정하다는 전제하에 자녀가 1명 있으면 취업 유지율이 29.9% 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결혼과 자녀 출산이 기혼 남녀의 고용률에 상반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보육과 가사를 담당한다는 전통적인 성역할 규범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에 대해 결혼과 출산을 앞둔 청년세대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청년세대의 생애 전망에 대한 연구는 남녀 모두 ‘노동중심적 생애’를 우선시 하고 있으며 ‘노동중심적 생애’가 유지될 수 있는 친밀성을 원하고 있었다(김은지 외, 2019). 뒤이어 남녀 모두에게 노동중심적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분석된 출산과 관련한 생애 전망 유형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무자녀 청년 남녀 모두가 전 생애에 걸쳐 ‘무자녀 전망’이 52.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김은지 외, 2020). 성별로는 여성이 57.8%, 남성이 48.5%로 9.3% 포인트의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더 주목할 것은 무자녀 청년 여성중 단지 10.4%만이 출산후 전통적인 성역할과 관련된 가족중심적 생애를 전망하고 있다는 점이다(김은지 외, 2020). 연구결과는 청년 남녀 모두에게 결혼과 출산은 선택이지만, 남성이 ‘결혼과 자녀 출산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라는 인식이라면, 여성은 더 나아가 ‘결혼과 자녀 출산은 가급적 안 하는 것이 좋다’라는 인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청년세대의 생애 전망에 대한 연구는 남녀 모두 ‘노동중심적 생애’를 우선시 하고 있으며

‘노동중심적 생애’가 유지될 수 있는 친밀성을 원하고 있었다(김은지 외, 2019) ©클립아트코리아

 

그렇다면 청년들이 생애 전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독립”과 “일”이었다(김은지 외, 2020). 특히 청년 여성들은 독립을 위해 일이 반드시 필요한데 바로 그 일을 얻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장애 요인이 결혼보다 출산 및 자녀 양육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경연 보고서에서도 명확히 입증해 주고 있다. 청년 남성들 역시 여성들만큼은 아니나 독립적인 삶과 일을 위해 전통적인 ‘가족 부양자 역할’이 부담스러워 결혼을 조절하고 절반가량이 무자녀를 선택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청년 남녀들은 가장 우선적으로 일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애를 계획하고, 생애주기 어느 시점에서 여건이 된다면 결혼이나 출산을 고려해 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저출산 정책은 바로 여기, 청년 남녀들이 선택하는 삶의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즉 청년 남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일하는’ 청년 남녀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선택하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고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책은 먼저 임신·출산 능력과 관련된 생물학적 신체 나이에 근거한 결혼적령기,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건강한’ 가족 형태와 이데올로기, 이를 뒷받침하는 전통적인 성역할 체계, 이 체계에 근거한 출산·가족·인구 정책 패러다임과는 단절해야 된다.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은 기존의 불평등한 성역할 체계를 넘어서는 ‘성평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생애 전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독립”과 “일”이었다 ©클립아트코리아

 

이미 성평등 패러다임에 근거한 정책을 통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 나라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930년대 말부터 성평등한 인구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1974년 ‘부모보험제’ 도입을 기점으로 정책적인 도약을 한다. 당시 뮈르달(Myrdal,1968)이 주장했듯이 성평등에 기반해 ‘결혼한 여성의 일할 권리’가 아니라, ‘일하는 여성의 결혼하고 자녀를 가질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감으로써 결국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스웨덴 이외에도 성평등 정책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 국가는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캐나다, 핀란드, 뉴질랜드, 호주, 아이슬란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국가들의 합계 출산율은 대략 1.8~2.0명에 분포되어 있으며, 지난 10여 년간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와 성별격차지수(GGI)가 10위권 안에서 앞뒤 순위를 번갈아 가며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국민들이 성별이나 결혼 유무와 관계없이 넉넉한 출산과 육아 휴직, 공공 보육시설, 유연근무 등으로 경력단절 없이 일·생활 균형을 이루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성별 임금 격차가 매우 낮으며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대체로 40~50%가 되는 나라들이다.

한국도 지난 20여년 가까이 수많은 저출산·인구 정책 전문가와 정부관계자들이 이 나라들을 방문하여 해법을 모색했고, 많은 예산을 투입해 정책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저출산 정책에 성평등 관점은 반영되지 못했다. 부분적으로 ‘결혼한 여성’이 일하는데 도움이 되는 육아지원정책이 눈에 띄는 정도였다. ‘일하는 여성’의 결혼과 육아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성평등에 기반한 전향적인 저출산 정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합계 출산율이 해마다 감소하여 심화되었다. 심지어 2020년에는 합계 출산율이 OECD 평균인 1.63명의 절반 수준인 0.84명으로 떨어져 인구의 자연감소로 성장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인구 오너스기가 본격화되었다.

결국 한국의 저출산 정책의 효과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고, 이 상황에서 오랫동안 여성정책 전문가들이 주장해 왔던 성평등 목표를 수용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1~2025)>(이하 제4차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제4차 계획은 여전히 ‘일하는 여성’이 결혼과 육아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책으로서는 부족해 보인다. 한경연 보고서에서 밝혀진 일하던 여성 14%가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일하던 기혼여성 29.9%가 자녀 1명 출산과 함께 직장을 떠나 20여년이 넘어서야 다시 임금도, 처우도 열악한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적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제 성평등 패러다임으로 더 파격적이고 과감하게 성별이나 결혼여부, 자녀유무와 관계없이 일하고 싶은 사람 일하고, ‘일하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결혼과 자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노동-가족-복지의 틀을 완전히 혁신해야 된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으로 노동-가족-복지의 틀을 성평등 패러다임으로 재구조화하는 논의를 구체적으로 시작해야 지속가능한 한국사회가 될 것이다. 제4차 기본계획에 담긴 성평등한 일터 조성, 부모 모두의 육아휴직 확산 등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더 발전된 성평등 정책을 통해 남녀 모두 일 중심의 생애를 안정적으로 이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1. 김은지·송효진·배호중·선보영·최진희·황정미(2019), 저출산 대응정책 패러다임 전환연구(I): 청년층의 젠더화된 생애전망과 정책 정합도 분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 김은지·송효진·배호중·최진희·성경·황정미·김영미·박은정(2020), 저출산 대응정책 패러다임 전환연구(II): 저출산 대응 담론의 재구성, 서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3. 대한민국정부(2020),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1~2025)

4. 한국경제연구원(2021),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변화 분석과 시사점 보도자료(7월 13일)

5. Myrdal.A.(1968), Nation and family: The swedish experiment in democratic family and population policy, Massachusets:The M.I.T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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