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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칼럼

[9화] - 당신은 몇 점짜리 아빠인가요?

2022-12-01

저는 반도체 기업에서 일한 지 10년이 된 마케터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는 수십 년간 전해 내려오고 있는 '반도체인의 신조'라는 것이 있는데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하라', '겸손하고 친절하게 행동하라', '무엇이든 숫자로 파악하라' 등 굳이 반도체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이대로만 행동하면 사회생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MZ세대가 듣기엔 다소 '꼰대' 같을 수 있는 말들이지만, 이따금씩 회의가 잘 안 풀리거나 팀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 말들을 되새기다 보면 길이 보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회사에서 팀장님과 식사를 하는데, 팀장님이 물으시더군요. "상혁님은 스스로가 몇 점짜리 아빠라고 생각해?" 아들이 9살이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법한 질문인데, 막상 직접 들으니 '저는 제가 00점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웠어요. 말문이 막혀 어버버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반도체인의 신조 중에 '무엇이든 숫자로 파악하라'는 것이 있잖아. 나는 그게 가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해. 본인이 아이와 얼마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 아이 친구 이름을 몇 명이나 알고 있는지와 같은 것들로 충분히 수치화할 수 있거든. 말해봐, 하루에 아이와 함께 대화하고 놀아주는 시간이 얼마나 돼?"

전형적인 우리 회사 임원의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아이와 함께하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으로 저와 아이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수치화를 위한 모든 일이 그렇듯, '내가 몇 점짜리 아빠인가'를 정하는 것은 먼저 기준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저도 몇 가지 항목을 정해 각각에 대해 점수를 부여해보기로 했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집에서 보내는 시간 중 얼마를 아이와 함께하는데 보내고 있는가?

②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끊기지 않고 몇 분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가?

③ 아이 친구들 몇 명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④ 그 친구들의 특징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했을 때, 맞다는 답을 들을 수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

⑤ 나와 아이만의 비밀이 몇 가지나 있는가?

아이의 하루 일과를 꿰고 있는지, 담임선생님 성함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들도 떠올랐습니다만, 이는 제가 싱글대디이기 때문에 몰라선 안 되는 것들이라 제외했습니다.(이 글을 읽고 계신 아빠들께는 이 항목들도 유효할 수 있겠네요!)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것들이라면 아이와 나의 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정해본 이 항목들의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며칠에 걸쳐 직접 기록해보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단조롭게 이어지는 일상 속에 갑자기 재미있는 실험이 더해진 것 같은,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가 싱글대디이기 때문에 퇴근 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 아침에 아이가 등교하기 전까지의 시간 대부분을 아이와 함께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 실험을 통해 '대부분'까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식사 준비나 설거지, 정리를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고, 이때 아이와 저는 서로 교류하기보다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하더군요.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는 약 65%의 시간만 아이와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고, 바쁜 아침에는 50%도 채 안된다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아이가 요즘 가장 관심 있는 '포켓몬스터'에 대해서도 그동안 저는 굉장히 자신 있었는데(저도 어릴 때 꽤 좋아했고 최근엔 아이와 함께 게임이나 만화를 즐기기도 하니까요!), 막상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보니 제가 아는 것이 별로 없더군요. 초등학생 때 150마리의 포켓몬 이름을 줄줄 외우고 다니던 저였지만, 898마리까지 늘어난 요즘 세대의 포켓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습니다.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30분을 채우지 못하고 대화는 종료되었답니다.

 


 

 


다행히 아이 친구들과는 저도 주말마다 함께 놀이터나 공원에서 만나고 있고,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2학년이 되기까지 줄곧 가족끼리 교류하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있어서 꽤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포켓몬스터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친구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요즘 그 친구와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공유하면서 제가 모르는 아이들의 세상에 빠져들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을 보냈는데요. 아이도 아빠와 이야기하면서 교우관계에 대해 생각이 정리되어 좋았는지, 그 후로 저에게 먼저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비밀에 있어서는, 녀석이 저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이 두 가지 있는데 이건 아빠 말고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건 정말 비밀이라 글로 적을 수 없어요!)이라고 하네요. 나름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그럼 아빠가 모르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한 비밀이 있냐고 묻는 말에 당연히 훨씬 많다고 말하는 녀석입니다.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봐서 비밀을 말하기가 꺼려진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입이 무거운 아빠로 이미지 변신을 해보아야겠습니다!

일주일에 걸쳐 저와 아이의 시간, 대화들을 기록하면서 숫자로 정리해본 결과, 저는 63점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참 멀죠! 부진한 성적이지만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이와의 시간이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져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며칠간은 아빠 역할에 대한 나름의 항목들을 만들어 시험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단순히 '몇 점짜리 아빠'인지 알아볼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고, 그 시간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볼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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